애통이 되지 않습니다.
내 옆에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작은 탄식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애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고난을 겪으며
울 기운도 없어졌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나 누군가를 사랑해서 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낮이나 밤이나 침착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양 손에 파스를 붙이고
쑤시는 어깨와 허리는 미뤄두기로 합니다.
손을 못 움직이면 당장 큰일입니다. 다급한 손부터 돕기로 합니다.
내 오른 손은 이미 오래 전에 말라버린 모양입니다.
왼 손이 모르게 일하는 오른 손은 남을 돕는 손일 것인데
그런 구제를 언제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여고시절..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성금을 참 많이도 걷었습니다.
교통비를 아껴 모으고
간식비를 아껴 모아 성금을 기탁했는데..
학교에서 낸 것도, 교회에서 낸 것도, 하다못해 어느 단체를 통해 후원한 것도 투명하지 못하게 쓰여지는 것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강남역 사거리 바닥을 기어다니며 찬양을 크게 틀어놓고 은혜를 구하는 장애인도
어떤 아저씨들이 봉고차에 한꺼번에 싣고 와 구역마다 풀어준다는 목격담에
그런 일을 하는 조직에 있었다는 사람의 무용담에....
왜 이리 불신감만 자라왔던지.
불쌍하다는 마음을 갖지 못해
나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을 안하는 죄를 합리화 하면서...
이러한 죄의 합리화는
죄에 대한 무감각으로 발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듣는다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주신 은사가 악용되는 지도 모르며 살았습니다.
지나간 흔적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 동안 얼마나 죄인이었는지
정말 열 두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기도할 때면 습관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교인이라면 마땅히 해야하는 것으로만 알아 머리로 드린 기도였습니다.
흔적의 조각들을 버리고
기념비를 모으며
정말 살려주신 은혜가 크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어 마땅했다는 것도 가슴으로 알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한번만 더 살려달라는 기도가 가슴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면서
처음 받은 큐티를 들고
삼손처럼 한번만 더 나에게 힘을 주시라고 기도했었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 마저도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한 것입니다.
어제는 나를 우리들교회로 인도하신 부목자님이
나를 위하여 금식기도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정작 나는 잘 먹으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정리하고 있노라 말씀드렸더니
그게 맞는 적용이라 하십니다.
죄인줄 몰랐던 것이 죄로 보이기 시작하니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감히 다시 살려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늘 중보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다른 권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으려고 하는 교만이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죽어 마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용서를 구할 면목조차 없음을 느낍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택자라는 목사님 말씀에 힘입어 오늘부터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의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절대순종하겠노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적용으로
탄원서에 두려움에 떨고 있을 부동산 중개인 두 사람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