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19(금) 눅 6:27:38 원수를 사랑하라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회사로부터 받고자 하는 대접? 임원과 중요한 직책 맡아 수행하며 능력도 펼쳐 보이고 인정받는 것?
대접받고 대접해 주는 것에 대한 기준? 역시^^ 아직도 세상의 자리와 능력? 말로는 거제에서 직책 맡아 있다면, 수요예배는 고사하고 이렇게 매주 주일예배 지킬 수가 없다. 자리 안 주시는 것이 예배의 복이다라고 하지만^^
이렇게 대접받지 못해 억울해 하고, 일에 대한 무기력을 합리화하는 면이 아직도 많다.
그래도 말씀 묵상으로 깨달아진 생각? ‘내가 회사라도 나를 이렇게 대접하겠구나. 이 정도 대접도 나를 선대하는 것이구나’
두 사건? 모두 능력이 아니라 조직인의 ‘태도’에 관련된.
동구 근무시, 귀국 청원이 계속 거부당하자 저지른 일. 집 문 잠그고 핸폰 끄고 스스로 잠적하여 행불된 것. ‘나 없이 잘해봐라 그래’ 하는 원망과 복수의 마음으로.
귀국해서, 혁신 업무의 모듈 리더로 근무 중, 일이 너무 힘들어서, 상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출한 사표.
해외에서 근무기강의 사고 치고, 국내에서 일 힘들다고 나자빠진 관계와 질서 불순종의 큰 사건들이 있는데,,
평직원이라도 아직까지 회사에서 일하며 월급받고 있는 것이,
내가 ‘내 뜻 몰라주고 나 힘들게 한다고 회사와 상사를 미워한 나를 오히려 크게 선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국의 겉옷을 빼앗는 것(육의 희생?) 같은 상사에게 회사가 원한다면 여기에 뼈라도 묻겠다는 (속마음의) 속옷을 주었다면? 상상해본다.
<37,38)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내에 대한 헤아림? 직장생활의 어려움 모르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많이 무시했는데,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더 강하고 우월한 세상 것으로 생색내고 무시한 것을 보니, 내 인간 사랑의 허상이 헤아려진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