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본문은 누가복음 6장 1-11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의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윗이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의 떡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임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른손에 장애를 가진
한 남자를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쳐주시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노기가 가득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극단적인 사건을 예로 드셨을까요?
예수님은 왜 고쳐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사람을 치유해 주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아주 작은 것에도 극도로 신경을 쓰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들에게 그들이 안식일의 경건함을 지키려는 의도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다윗의
극단적인 안식일을 범한 사건을 예로 드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9절)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답을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도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9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불법적인 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안식일에 지켜야 할 것을 거절함으로써,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악을 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증오합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남자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또한 병원은 일요일에도 문을 닫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손의 장애를 가진 이 사람에게 저는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시기는 했지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하고 말씀하심으로 그는 교회에서
처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8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쪼그라든 손”으로 살아야 했습니다.(8절)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그가 지은 죄의 결론이라고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를 모두의 앞에 서게 하시고, 그의 감춰진 죄와 죄의 증표와 사회적인
고립감을 그곳의 모두에게 보여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를 한 발 더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순종했다는 것만으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는 죄인의 모델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모델로 변화됩니다.
제가 교회에서 간증하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목장에서 내 죄를 오픈할 때 위와 같은 감정을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죄로 인한 마른 손을 드러내는 것이 싫지만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 안의 것을 오픈할 때 치유를 경험하게 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오픈을) 처음 했을 때에는 오늘 말씀의 손이 마른 남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픈하는 것은 창피한 일일수도 있기 때문에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나의 좋은 것을 자랑하고 싶지 부끄러운 것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용 : 계속해서 앞으로도 나의 마른 손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시고, 나의 부끄러운 마른 손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치유받기 위해 그들 앞에 서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