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
누가복음 6:1-11
중학교 때부터 술 담배 등으로 교회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지들은 죄 없나 라고 마음속으로 같이 정죄 하며 무시 했다. 그들이 바리새인 같았고 그들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하나님을 떠나간다고 생각 했다. 그런 경험이 많기에 나는 안 그럴 줄 알았지만 주위 사람들에 보이는 행위로 그들을 정죄한다. 최근에 여러 공동체에서 또 여러 상황에서 정죄만 한다. 난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럼 정작 나는 어떨까? 교회 시간에 예쁜 여자 처다 보기 바쁘고 주위 친구와 여자 외모를 평가한다. 적용으로 읽는 성경은 눈으로 활자만 쫓아가기 식이라 방금 전에 읽고서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배를 기쁨으로 여기기 보단 습관과 책임감 의무 식의 감정으로 드릴 때가 많다. 또 예배를 드린다는 것보다는 설교를 평가하는 평가자의 자세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간다. 난 바리새인 보다 더 가짜의 모습으로 살았다. 먼저 나의 기복신앙 때문이다. 성공 복음에 빠져 복을 받기 원함이다. 나름 회심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업하겠다고 결심 한 뒤 최악의 재정난을 맞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악으로 버틴다. 마치 오늘 말씀 하나 안 지키면 부정 타서 복 못 받을까 걱정하듯이 하나님을 믿는다. 둘째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해서다. 물속에 빠진 사람은 힘이 빠지기 전에 꼭 발버둥 친다. 문재는 그 발버둥이 구조하는데 전혀 도움이 못되고 방해만 된다. 나의 발버둥이 그런 꼴이다. 남을 정죄하기에 열심을 다하는 내 모습이 꼭 그렇다.
오늘 큐티책을 펴는 과정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중의 고난의 양이 찬다는 것은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고난이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내 고난의 양이 차는 것입니다. 란 글을 보았다. 예전에는 몇 번씩 하나님께 개겼다. 한번 해보자고 할 수 있는 모든 방황을 다 했고 억지로 더 죄악에 길로 달려 갔다. 물론 결과는 다 깨졌다. 이 글을 보고 빨리 이 고난 가운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겠다고 생각 하는 내 모습을 보며 힘이 예전보다 많이 빠진 것 같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힘이 많이 빠져 보이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많을 몇 번 들었다. 살 빠져서 그런가란 생각 잠깐 해봤지만 그것 보다는 독기가 약간 빠진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내 것이 빠지고 주님 닮고 싶다.
어제 머피에법칙 처럼 화나는 일이 가득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여러 사람들과 환경이 신기할 정도로 나를 건드렸다. 감사하게도 말씀으로 이겨내서 분노를 폭발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고난이 힘들지만 이 고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
말씀을 꾸준히 읽고 기뻐하겠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및 덕담 한마디씩 하겠다.
지금 있는 어려움이 헛된 어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조금 더 알게 도와주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과 분노가 올라오는데 재 힘으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