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사도행전 18:18-28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자 이때를 기회로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신학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감히 바울의 적수가 되질 못했던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갈등을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시켜 바울을 법정 한가운데 세웠다. 그러나 신임 총독 갈리오는 종교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돌려보낸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은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가 다시 시작되자 움직일 때가 된 것으로 판단한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게 된다. 이것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고 이미 몸에 밴 익숙한 전략이었다.
그는 배편을 이용해 수리아로 떠나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동행했다. 이들은 교회를 세우는데 자신의 집을 기꺼이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들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고, 이들의 섬김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서갔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바울은 떠돌이로 비쳐졌을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는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세워진 교회를 굳건하게 하는 일을 위하여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며 섬겼던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적어도 두 번 이상의 장문의 편지를 기록하였고 에베소, 갈라디아,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서신을 통한 교회 양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초대교회는 신학적으로 취약했다. 직접 가지 못할 때, 서신을 통해서 교회를 바로 세워나갔다. 그의 이러한 열심으로 보낸 편지가 정경으로 인정되게 되었고 오늘 우리의 손에 성경으로 읽혀지게 된다.
유럽을 자신의 교구로 삼고 흩어진 교회들을 섬기기 위해 그는 떠돌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다. 때로는 육로를 이용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의 이러한 광범위한 선교여행을 비난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뜨내기 신학자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에베소에 도착해서 그곳 교회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맡기고 또 다른 선교지로 길을 떠난다. 머물 것을 요청했으나 그의 대답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배를 타고 가이사랴로 떠난다. 바울의 일생의 기조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있었다.
그때, 에베소교회에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오게 된다. 그를 소개하기를 일단 말을 잘했다, 성경에 능통했다. 그는 지식적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다.
회당에서 함께 들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조용히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 구약에 능통한 아볼로를 신약에 접목시키는 양육을 한 것이다.
그 후 아볼로가 고린도교회로 가려고 할 때, 형제들이 그를 격려했고 서신을 통해 그를 영접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섬김을 통해 그는 고린도교회에 많은 유익을 끼치게 된다.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린도교회 안에는 여전히 유대교를 벗어나지 못한 신학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교회가 세워지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들을 통해 초대교회가 든든히 서갔다. 에베소교회를 든든하게 지켰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의 성장을 통해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배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교회가 건물에 투자하기에 앞서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 일임을 깨달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