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4장 31-4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의 중한 열병을 고쳐
주시자 그녀가 곧 일어나 무리의 시중을 듭니다. 사람들이 데려온 모든 병자들에게 머리
위에 손을 올려 고쳐주시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언하려 하는 귀신들을 꾸짖으십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을 계속 자신들의 동네에 머무시게 하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마을들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계속해서 꾸짖으실까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내용을 전하셨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유대인들이
평생 동안 그들의 스승과 제사장들로부터 들었던 성경말씀과 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설교를 들었고 그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내 인생의 목적 그리고 삶의
자세에 대한 인생의 깊이를 더해 주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설교들은 내 굶주린 영혼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설교들이
그 설교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는 성경구절은 고사하고 따로 말할 것도 별로 없는 지루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양재 담임목사님의 가르침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해석
하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일관되게 훌륭한 내용들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게 되고 치유가 일어나며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도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 성경말씀을 잘 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곧
하나님이셨고 그가 바로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탁월한 것은 하나님이 그녀를 훈련시키셨고 기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고난의
광야로 보내졌으며 그 곳에서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했습니다.
“이 가르침이 무엇인고? “ 가버나움 사람들이 묻습니다. (36절)
결국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고 반면에 사단과 마귀와 이 세상에서 행복에 대한 환상을 좇는
사람들과 우상을 만들고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귀신은 실재하는 것이며 꾸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은 특별히 수요예
기도가운데 사단과 귀신을 책망하여 물러가라고 꾸짖으십니다.
담임목사님의 경우는 마치 시몬 베드로의 장모와 비슷합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열병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크게 존경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나누며 나의 삶을 성경 말씀에 비춰 어떻게 보는지를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께서 내가 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하는지를
또한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부분 나의 고집스러운 죄의 속성을 보게 되는데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죽음을 통해서 내가 그것을 믿는 범위 안에서 자유로움을 얻지만 그것이 나를 억압
하지는 않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성경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성경에 넘쳐나는 죄인과 타락한 자들과 나의
모습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욱 더 완전한 고백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가르침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놀라운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적용 : 담임목사님의 주일설교를 일주일 동안 더욱 부지런히 듣고 묵상하겠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제 마음의 귀를 열어주옵소서. 당신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