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3일 토요일
사도행전 17:22-34
“아덴 그리고 구원 받은 몇 사람”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도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3
그들도 찾고 있었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정의하고 나름대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름 모를 신이라고 쓰여진 제단을 보고서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임을 간파하였다. 바울은 전도대상자들을 면밀하게 살피기 위해 ‘두루 다니며“ 살폈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비록 자신을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의해서 도망치다시피 찾아온 도시였지만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믿고 있었다. 그의 고백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2
그는 공회에서 유대인을 향해서는 그들이 갈망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심을 풀어 가르쳤다. 한편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만물의 근원 되시는 창조주이심부터 가르쳤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형상에도 계실 수 없는 크신 분임을 설명한 맞춤식 전도였다.
너희들의 자부심이자 혼을 담아 건설한 신전에 계실 수 없는 분이시다. 제한받으실 수 없으신 크신 분임을 천명하였다. 너희들의 정성을 다한 섬김이 필요한 부족한 신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비와 공기와 햇빛을 베푸시는 만물의 근원이심을 목소리를 높였다.
갈망은 있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상의 도시, 그 한복판에서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였다. 화려한 신전과 그럴듯한 조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는 거짓 우상들을 고발하였다.
이제는 변명할 수 없다고 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그 증거라고 외쳤다. 쾌락주의에 매몰되어 현실세계에 안주하고 있는 그들 앞에 대놓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을 지나 모레에 미칠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리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돌아오라고 돌아와야만 한다고 거듭해서 외쳤다.
그러나 수많은 청중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특강을 들었으나 소수의 몇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드렸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고다 왼편 십자가에서 죽어간 강도였다.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하는가하면 오늘처럼 별 소득 없이 끝나는 전도의 현장도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그의 발걸음은 고린도로 향했다.
사도 바울의 꺼질 줄 모르는 이와 같은 복음에 대한 열정은 로마의 단두대에서 막을 내리기까지 계속 된다. 그러나 그는 죽어간 것이 아니라 부활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