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4장 1-1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마귀는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앞에 있는 돌들을 떡으로 바꿔서 배고픔이 그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귀 자신에게 경배하면 세상을 다스리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성전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지킬 수 있는지를 증명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왜 마귀는 포기하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을 허용하셨을까요?
세 번째 시험을 받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고 마귀가 그런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이 상황은 아이러니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순종한 적이 없던 마귀에게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마귀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유일한 존재는 아닙니다.
기드온이 그랬고 야곱도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저 역시도 하나님과의 작은 흥정을 통해서 그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 일이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또는 저렇게(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할께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믿음이 매우 적거나 아예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을 받는 일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닌 제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믿음을 알고 계십니다. 제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험, 유혹 그리고 훈련, 이 모든 것들은 내 죄와 잘못된 점들을 나 자신이
직접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내 안에 있던 믿음을 이끌어 냈습니다.
내 안의 죄를 보면 볼수록 나의 믿음은 단단해집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구원으로 이끌어야
할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얼마나 감정적으로 부적절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약하고 겸손한 존재로 바라볼수록, 나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저는 한때 더 큰 믿음을 원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분명하게 내 죄를 볼 때만이 그리고 더 깊이 그것을 느낄 때 비로소 제가 찾던 더 큰
믿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키우는 방법은 죄를 실수나 운이 나쁜 것, 또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는 보통의 것으로 합리화
하지 않고 죄를 있는 그대로의 나의 죄로써 보는 것입니다.
일단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나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더니 하나님은 그런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셔서 그 죄의 대가를 지불해 주셨고 그리고 믿음이 나에게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는 나 자신을 메마르고 황폐하며 아무것도 없는 광야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사막에서 저는 돌을 떡으로, 납을 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초능력자와 같이 아무 이상 없이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광야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우상들-직업, 돈,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부서지고 무너지도록
허락하신 이후에야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하신 광야는 사실 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이
투영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진리를 깨닫게 되자 하나님께서 저를 그 곳으로부터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광야도 시험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앞서 가셔서 내가 인생의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사랑으로 나를 기다려 주시는 예수님이 저에게는
필요합니다.
적용: 우유를 자기가 사서 마시겠다고 고집하는 처남을 위해 우유를 사주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죄의 광야에 당신의 사랑의 삶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를 양육해 가시며
나의 삶에 활력이 넘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