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2일 금요일
사도행전 17:16-21
“공회와 저자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사단의 역사도 늘 함께 했다.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에서 쫓아와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그들의 위협을 느낀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급히 아덴을 향하여 나아갔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교지를 옮겨야만 했던 당시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빌립보서 1:20절에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당시 모든 정치의 중심지가 로마였다면 그리스의 심장이었던 아덴은 문화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건축물들을 보면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따라 그곳에는 각종 우상이 넘쳐났고 철학이 발달한 도시였다.
그곳에서도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의 화려함과 우상으로 도배된 도시를 바라보며 그는 격분했다고 했다.
전례대로 공회를 찾은 바울은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한편으로는 저자거리로 나아가 대중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밖으로는 노방전도를 한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을 벌였고 그가 전하는 예수와 부활은 그들에게 새로운 종교에 대해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는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아덴 사람들은 밥만 먹으면 철학을 이야기했고 늘 새로운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사도행전 17:21
자유의 도시였다. 토론은 그들의 생활이었고,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했다. 이런 토양 속에서 철학이 발달했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 쟁쟁한 철학자들을 배출한 도시이기도 했다.
스토아학파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유물론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행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면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규정하고 스토아학파와 함께 헬레니즘 시기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방인 바울의 복음은 전혀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유일신과 부활을 주장하는 바울을 그들의 토론광장이었던 아레오바고로 초대했고 연사로 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그리고 당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과 맞짱 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유대라는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그 성벽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전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여리고성 같은, 민족이라는 성벽을 넘어서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전하는 담대한 군사로 변신한 것이다. 복음 앞에서 그는 당당했고 탁월했다. 그는 복음 앞에서 주저함이 없었다. 막힘이 없었다.
그의 삶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전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초월했다. 복음을 향한 한 인간의 무한한 열정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