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1일 목요일
사도행전 17:10-15
“다시 한 번”
바울은 베뢰아에 도착하자마자 회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었다. 구약을 이미 배경으로 갖고 있는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이 그토록 대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예수되심을 풀어 가르친 것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과는 달리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드리기에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들은 들을 뿐만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드렸다. 이것이 그런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이들의 이와 같은 복음에 대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렸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2-14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달음질에 비유한 바 있다. 그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을 향하여 줄달음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한일에 안주하지 않았다. 앞에 있는 소명을 향하여 나아갔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향한 그의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와 더불어 사단의 방해도 집요했다. 데살로니가에서 사도 바울 일행을 놓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소동을 일으켰다. 어제도 언급한 바와 갈이 종교적인 일을 정치문제로 비화시켜 그들을 옭아매려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눈치 챈, 형제들이 바울을 배편을 이용해서 피신을 시킨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전도전략이 숨겨져 있다. 때로는 맞서서 싸우기도 했지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만일 나의 삶에서 복음 때문에 아무런 방해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달음질을 멈추었거나 시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숨이 가쁠 정도로 멈출 수 없었던 사도 바울의 사역이 내게 오기까지 이천년의 시간이라는 달음질이 필요했다.
오늘도 땅 끝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 땅에 천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외치기에 앞서 죽어가고 있는 사천만 동포들의 신음소리가 먼저 들리기를 소망한다.
이제는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깨어나야 한다. 사도바울의 피 끓는 심정으로 죽어가고 있는 나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