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0일 수요일
사도행전 17:1-9
“복음 때문에”
빌립보에서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무고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의 옷은 찢겨졌고 무수한 태장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원망 대신에 기도하였고, 슬픔 대신에 찬양하였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다. 지진이 일어났다. 옥문이 열리고 바울 일행을 묶어놓았던 차꼬가 풀려졌다.
당연히 탈옥을 예상했던 간수는 자신의 책임 때문에 자결하려고 하였고, 그 자결을 막은 사람이 죄수의 신분이었던 바울 일행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이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한 가정을 구원하신다. 옥문이 열리자 간수의 마음의 문이 열렸고 그의 가정에 복음이 전해졌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31절
사도바울의 외침처럼 간수의 온 집이 그 밤 그 시각에 세례를 받았다.
복음 때문에 갇혔지만 그들은 주 안에서 자유인이었다. 감옥이 성전이 되었고 예배의 장소가 되자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고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풀려난 바울 일행이 찾아간 곳은 강가에서 만난 루디아의 집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격려하고 데살로니가로 떠나게 된다.
사도행전 17:1절은 바울의 행선지를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다녀가 데살로니가에에 이르니”라고 한 줄로 요약하고 있지만, 실은 160km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몸을 추스릴 시간도 포기하였다. 그들은 달음질 하고 있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전도전략대로 유대인 회당을 찾았고 3주간에 걸쳐 강해설교를 하였다. 구약에서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예수되심을 풀어 가르쳤다. 당시 유대인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는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지도자였다. 그에 반해 바울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였다.
어찌 보면 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무모한 바울의 설교는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르게 된다. 그에 반해 유대인들은 시기하였다고 했다. 그들은 신학적인 논쟁에서 바울의 상대가 되지 못하자 불량배들을 선동했다. 그들은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시켜서 거짓 고소를 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에서처럼 당하지 않았다. 사태의 추이를 살핀 후, 그 자리를 피하여 베뢰아로 향했다.
바울의 전도여행을 회고하는 고린도후서 11:22-28절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오늘 바울의 데살로니가의 전도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 이천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의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바울의 이같은 수고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분명하게 자각한다면 나 역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바울의 고백을 마음에 담으며 하루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