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본문은 누가복음 2장 39-5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열 두 살이 되던 해 유월절 기간 동안 그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무시면서 그 곳에서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을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사흘 동안 그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성전에 있어야
함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부모를 따라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여 성장
하면서 지혜를 더하여 갑니다.
왜 예수님은 다른 절기가 아닌 유월절에 성전에 머무셨을까요?
교사들을 놀라게 한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있는 학교의 고등학생들이 저에게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잘 놀라지 않는 편입니다.
30년 넘게 그 또래 아이들을 대해 왔고 내가 전에 알지 못하는 지혜나 통찰에 관한 말을
들어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자주 놀라게 됩니다.
그들의 사고의 표현과 어휘의 선택, 그리고 리듬을 살리는 라임 등은 나의 수준을 뛰어 넘는
놀라운 것들입니다. 지금도 저에게는 제가 가르쳤던 최고의 학생들만큼 글을 잘 쓸 수 있었
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와는 다르지만 초등학교 학생들도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것이 제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접촉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전기, 자력, 중력, 화학에 관한 지식과 생명체가 어떻게
유지되며 어떤 힘에 의해서 이 세상이 형성되었는가에 관해서 제한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 때마다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언어는 어디에서 생겨났나요?”, “위가 어디죠?”와 같은 번뜩이는 질문을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완전히 열려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탐색합니다.
작은 기계와 같은 반복적인 암기에 의해 습득되는 지식만을 원하는 비정상적인 부모가 아이를
망쳐놓지만 않으면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와 같은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
그것이 어린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가르친 것이며 교사들에게 어떤 질문을 해서 놀라게
했던 것이었으며 그들이 놓쳐버린 어떤 연관성을 가르쳐 주신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열 두 살의 어린 예수님이 그의 부모를 따라 집에 갔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순종했다는 구절이었습니다. (51절)
그리고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하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이번 주일 설교의 ‘교회의 일꾼’이 되기 위한 내용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님이 언급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오직 그분만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며 또한 우리를 도우시고 그리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설교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부모님에게 순종합니다. 성전에서 교사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놀라게
하던 예수님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적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어려운 순종을 하는 가운데 지혜가 더하고 키가 자라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총”(53절)을 발견하고, 그리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순종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롭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나 자신의 교만한 방법으로, 내 멋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16살 때 그런 건방진 저에게 어머니는 뺨을 때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마음에 새기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51절)
저 역시도 열심히 일을 하지 않거나 특별히 어떤 것에 순종적이지 않아서 교사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저에게 큰 일이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나의 불순종은 내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종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으며, 특별히 매일 큐티 묵상하는 일에도
나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닌, 나의 불손종에 나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적용 : 하나님의 말씀인 내 삶의 작은 적용에 순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순종과 낮은 종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분노하지 않으며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만 보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