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 화요일
사도행전 16:35-40
“위로하고 가니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사도행전 16:17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 돈을 벌어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분명한 목소리로 거듭해서 구원의 길을 말하고 있었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물질에 있었기에 진실을 외치는 여종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예언하는 말로 돈을 벌어왔지만 오늘은 그녀의 말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와 같은 왜곡된 시야는 그녀가 귀신들린 자리에서 풀려났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한 인생의 회복이라는 기쁨보다도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돈을 모으는 것이 더 정당한 삶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중동 발 호흡기 질환 ‘메르스’로 인해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도 경제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야 감염병원을 밝힌 것도 병원 운영에 대한 타격을 염려한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온 나라가 돈이라는 우상 앞에서 절절매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바라본다.
메르스라는 호흡기 질환보다 더 심각한 질병이 있다. OECD 국가 중 부정과 부패 단연 1위를 달리면서도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사는지를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병든 자가 병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소동하고 지만, 이럴 때일수록, 천만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 절반이라도 도덕을 가르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오직 돈 버는 일이 잘사는 것인 줄 법처럼 굳어진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다시 한 번 흥왕하기를 기도한다.
세상에도 위급한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외면할 때 처벌하는 선한사마리아 법이 있다. 호흡기 질환으로 온 나라가 소동하는 것처럼 죽어가는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멈출 수 없었다. 매를 맞으면서도 감옥에 갇히면서도 복음을 전해야만 했다.
주님 앞에서 서는 날, 하나님나라 법정에서 할 말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 전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 바울은 빌립보 최초의 교회가 될 루디아의 집을 방문했다. 그동안의 옥고를 위로 받아야할 그가 오히려 성도들을 격려했다. 이것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백했던 사도바울의 음성을 가슴에 담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