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6일 토요일
사도행전 16:6-15
“우리를 도우라”
기도의 응답을 세 가지로 나눈다고 배웠다.
‘그래’
‘기다리라’
‘아니다’
그중 ‘아니오’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알기는 했지만 실제로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인도하심임을 인정하기 까지는 굴곡진 인생길이 필요했다.
분열의 시작으로 출발한 선교여행 길이었다. 별일 아닌 것을 별일 만들었던 자기 고집이 충만한 바울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신의 계획을 돌이키는 순종의 사람이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났다.
바나바와 결별을 선언한 후,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에 도착했다. 이고니안에서 복음을 전하다 살해의 위협을 피해 도망친 곳이다. 그러나 집요한 사단의 방해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와 무리를 충동하였고 인민재판식으로 바울은 투석형에 처해진다. 죽다 살아나 다시 찾은 도시가 더베였다. 그곳에서 복음을 다시 전했다고 했다. 끊임없는 전도의 열망과 불굴의 의지가 죽음의 땅에 생명을 다시 전한 것이다.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며 복음을 전한 더베였다. 2차 전도여행에서 다시 찾은 그곳에서 신실한 제자로 자라난 디모데를 만난다.
그러므로 더베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돌에 맞아 거반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곳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부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났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썼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할 수 없이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르렀고 밤에 환상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바울은 바나바와의 다툼을 기억했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바울에게 ‘아니오’를 배우게 하셨다. 아무리 목적과 명분이 바르더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다메섹 도상이었고 오늘 아시아를 향한 발걸음을 돌이키게 하셨다. 그는 이 여행을 위해서 해로와 육로를 번갈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복음으로 똘똘 뭉친 바울의 모습을 ‘예수에 미쳤다’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다.
돌이키고 돌이켜 도착한 마게도냐 지방 첫 도시 빌립보였다. 환상 중에 손짓하며 자신을 부르던 그곳에 빌립보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 곳을 찾던 중, 거처하고 있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가에 나가 앉아 모인 여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였던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바울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셨고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게 된다. 그녀는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였고 바로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었다.
바울로 하여금 루디아를 만나게 하시고,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셨다. 루디아를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마게도냐에 선교의 문을 여셨다. 바울의 열정을 사용하셨으나 이 모든 일의 시작과 마침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아니오’를 연발 하시다가 오늘에서야 ‘그래’를 말씀하시다.
생명의 열매는 나의 계획과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마음을 감동케 하시는 전적인 성령의 역사임을 배우며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