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장 57-66절입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고 그의 할례를 행하는 자리에서 어머니 엘리사벳은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고 친척들은 반대했지만 남편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아내의 뜻에 동의합니다.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돌아오고 그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근처에 사는 자와 온 유대가 다 이 소식을 듣고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까를
궁금하게 여깁니다.
어떻게 엘리사벳은 아들의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를 알았을까요?
왜 사가랴는 부인 엘리사벳이 아들의 이름을 말한 이후에 그 이름을 썼을까요?
오늘 저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4학년 학생이 벌이는 뜨거운 논쟁에 불가피하게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남학생은 예의가 없고 매우 무례했으며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소리를 높여 말하고
있었고 저와 학교 직원들 몇 명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복도로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내 쪽으로 끌고 와서는 이 아이가 말을 듣지도 않고 간단한 규칙조차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아이를 남겨 두고 가버렸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와 똑같이 감정이 격해져 있었고
둘 다 모두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 상황이 잘 처리되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난감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식들과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잘 대처하지 못했던
저에게는 이 상황을 해결할 지혜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나중에 따로 처리해도 되었지만 학생은 바로 그 자리에서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서 무슨 일인지를 묻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선생님이
불공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일단 울도록 한 후 기다렸다가
왜 우리에게 규칙이 필요한지를 물었습니다.
잠시 규칙에 관한 얘기를 나눴지만 그 학생은 선생님의 불공정함과 그가 가진 불만 얘기를 계속해서
꺼내면서 대화의 주제를 흐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 학생에게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어서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자기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저는 나를 포함해서 그의 반 친구들과 또한
선생님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설명하고 우리 모두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그건 불공정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그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소유하지를
못해서 불만이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발생한) ‘인류의 타락’을 예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그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사과를 건성으로도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할 것을 코치해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그도 화가 풀릴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선생님에게로 갔고 그는 진지하게 사과했습니다.
대화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던 선생님은 나에게 그의 불만과 (억울한)감정을 나에게 그의
식대로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학생을 수업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수업을 할 준비가 된 한 명의 얌전한 어린 학생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교회의 양육훈련으로 가능했습니다.
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면 오늘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에게 고함을 치고 있는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벌어진 상황에 대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더라면(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에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향기를 나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도 저는 이 자기중심적이고 분노와 불만이 많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이 아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와 아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용 : 하나님의 치유에 대해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의 언어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는 일에만 나의 입을 열고
혀가 풀려 말할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