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4일 목요일
사도행전 15:36-41
“며칠 전”
며칠 전, 술에 취해 플랫폼을 입구로 착각한 노인이 선로에 떨어졌다. 공익요원과 몇몇 분들이 서둘러 구조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사라졌다며, 그때 구조했던 의인을 찾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참으로 선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일이다. 그 선한 일을 위해 선교팀이 꾸려지고 교회의 기도와 후원 속에 나아가려고 할 때, 문제가 생겼다.
구원관에 관한 신학논쟁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였다. 그때는 온 교회가 힘을 합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 정리된 후, 바울과 바나바는 다수의 사역자들과 함께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힘썼다.
그들의 목회는 성공적이었다. 자신들이 떠나도 교회는 든든히 서갔다. 다수의 사역자들을 세웠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성공적인 이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준 모범적인 교회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르치고 전파는 일에 다수의 사역자들과 함께 하였다. 또한 수년간을 한 곳을 바라보고 함께 한 동역자였다. 그랬던 바울과 바나바가 아주 사소한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 1차 전도여행 때 동행했던 마가가 도중에 선교지를 이탈한 일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팀에 다시 합류시키려 했으나 바울은 완강히 거부했다. 이일로 인해 실험적인 공동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두 사람이 분열된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성 문제도 아니었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하나 되지 못했다. 이런 사건은 슬쩍 빼놓아야 은혜로울 텐데 위대한 사도들에게서 일어난 다툼을 누가는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한국교회 교단의 분열상을 미리 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라고 평가받던 그들이 이처럼 하나 되는 일에 실패하였다.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지에 또 하나의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동료 선교사라고 했다. 복음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땅 끝을 향한 선교사들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성공적인 사역에 대한 시기심과 텃세 등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이처럼 연약한 인생들을 알고 계셨다. 그런 불완전한 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러한 분열은 나의 삶 속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명분은 하나님을 위한다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해서 다투고 아파했다.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 고집으로 공동체를 아프게 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