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장 1-25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자세히 조사, 연구한 누가는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해서
데오빌로에게 설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사가랴가 성전 안에서 분향하고 있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한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아들을 임신할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 할 것이며 그는 엘리아의 심령과 능력을 가질 것이며 많은 이들을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믿지 않으므로 그의 아들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그가 말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임신을 합니다.
왜 천사 가브리엘은 세례 요한이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할까요?
엘리사벳은 어떻게 하나님이 그녀로 하여금 임신하게 한 사실을 알았을까요?
오늘 말씀에 세례 요한이 “아버지들의 마음이 자식들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며(17절)” 구절을
읽었을 때 전에 이런 표현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누가복음을 여러 차례 읽었지만 그 구절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 눈에 보이지 않도록 몰래 감추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 말이 쓰여 있는지 확인하려고 다른 버전의 성경을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 표현이 그대로 있었을 뿐 아니라 선지자 말라기도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으며
다만 뒷부분이 더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라기 4:6)
이 표현을 보고 마치 냄비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왜 전에는 이 구절을 보지 못했을까요?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향하지를 않아서 그것을 볼 수 가 없었나 봅니다.
내 마음은 나 자신을 향해 있었고 세상적인 욕심을 향해 있었습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믿는 아빠로써 아이들을 사랑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은 그 때 충분히 그들에게 마음을 돌림으로써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울 때 아이들은 어렸고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고 마냥 좋고 아니면 말썽 부리던 철부지들 이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너무 자주 그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때 시를 쓴 것이 있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썼던 구절 중에서 : “내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의 존재를 걸림돌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만
있다면....” 하는 구절이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제 마음은 더욱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아이들 없이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내 죄를 더 깊이 그리고 분명하게 보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저질렀던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반복해서 사과하고 어렸을 때 주지 않았던 돈을 주면서까지
화해를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아들의 집에 유리창문 값을 내주었고 의붓딸과 그 가족을 위해서 휴가비를 주기도 하고
딸 에리카의 대학 등록금을 내 주기도 했습니다.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한 아이만
주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달에 미국에 있는 딸 테스가 한국에 나와서 몇 달 동안 나와 함께 지내며 제가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될 예정입니다. 딸아이가 태어나고도 몇 년 동안 저는 그 아이에게 보다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마음이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이용해서 그녀와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어린 딸만 남겨졌으며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살면서 저는 일 년에 한 번 아이를
찾아가고 한 달에 몇 번 통화를 하며 지냈습니다.
딸에게 나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줄 것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부녀에게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적용 : 내 마음을 딸 테스에게 돌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나의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저를 향한 사랑을 깨달아서 그 마음이 내게서 돌이키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