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0일 토요일
사도행전 14:20-28
“바울의 무한도전”
사람 인심이 조석지변이라 했던가? 예수님이 그랬고 사도바울이 그랬다. 호산나를 외치며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던 자들이 돌변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 놓아 외쳤다.
바울을 통해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장애인이 다시 걷게 되자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라며 신격화했다. 그리고 바울일행에게 신으로 받들며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 올라온 몇몇 유대인들이 충동하는 말에 그들이 돌로 바울을 치게 된다. 적나라하게 들어난 인생들의 이중성을 본다. 늘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내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에 맞으며 바울은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자신이 던진 돌에 죽어가면서 외쳤던 스데반의 마지막 말을 기억했다. 다메섹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드리기 위해서 살기등등해서 쫓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얼굴이 보였고 숨을 거두며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스데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성난 군중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바울을 마을 밖으로 내쳤다. 바울을 둘러싼 제자들이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 오열하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여겼던 바울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먼지를 툴툴 털고는 이내 그 성에 들어갔다.
조금 전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진 루스드라에 들어가 그가 한 일은 몸조리가 아니었다. 전도를 쉬지 않았다. 이튿날 바나바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였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지나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야기하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을 것을 권면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다.
흔히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하고 강단에서도 ‘삼박자 구원’을 전한다.
요한삼서 2절을 근거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한 구절을 근거로, 예수 믿으면 영혼 구원 외에, 물질 복 건강의 복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고난이 없는 영광을 말씀하지 않았다. 요한 사도 외에는 모든 사도들이 순교를 당했고 오늘 살펴본 대로 바울의 고난을 목격하였다.
그들의 환난은 전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환난이 없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바울이 걸어간 길은 다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다소로 낙향해 묵상하고 또 묵상한 하늘의 비밀은 너무나 크고 놀라웠다. 구약에 넘쳐흐르는 보혈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고백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재야에 묻혀있던 바울을 바나바가 등용하면서 이방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렸다.
그들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잇달리아에서 배편으로 안디옥 파송교회로 향했다. 인근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모아 연합집회를 열었다. 선교보고를 통해 이방을 향하여 믿음의 문을 여신 하나님을 일하심을 증거 하였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복음을 향한 열정을 본다.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그곳을 다시 찾아가야만 했다. 바울의 ‘무한도전’이었다.
그는 달음박질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한일은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앞에 남은 할 일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던 바울의 고백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