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때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먼저 양문을 세워 봉헌하고 문짝을 달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쌓아 봉헌하였다.
그리고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의 그 다음 부분을 건축하고 이므리의 아들 삭굴은 그 다음 부분을 건축하였다.
하스나아 집안 사람들은 생선문을 건축하여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아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학고스의 손자이며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은 성벽의 그 다음 부분을, 므세사벨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은 그 다음 부분을, 바아나의 아들 사독은 그 다음 부분을 건축하였으며 그 다음 부분은 드고아 사람들이 건축하였는데 그들의 지도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느헤미야 3:1∼5)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양문을 세워서 봉헌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드고아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성벽을 세우는데 일을 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보수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맡아서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였지만 드고아 사람들 중 지도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으므로 일반 사람들이 그 일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편하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주님의 일은 누가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 특히 대제사장 엘리아십 조차도 성벽을 수리하는데 열심히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는 놀고만 있는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떤 조직에서나 이러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일을 하여야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늘 주님에게 물어보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주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생활을 할 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네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거나 회피하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서는 내 자신에게 부담을 덜어내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눈과 사노아 주민들은 골짜기문을 건축하여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하였으며 그들은 또 똥문까지 성벽 450미터를 수리하였다.>(13)
하눈과 사노아 주민들이 골짜기 문부터 똥문까지 450미터를 수리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에는 생선문, 골짜기문, 똥문 등 여러 가지 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설물을 버리는 똥문은 지금은 통곡의 벽이 가까워서 검문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들이 때로는 의미가 있는 문이 있기도 하며 미문처럼 외형적으로 아름답게 지어져 있어서 불리는 문도 있습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더럽게 배설물로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배설물들은 잘 다루어서 어느 한 쪽으로 빼내야만 전체에 냄새를 없앨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일어나는 더러운 것들도 말씀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내 속에 더러운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들도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씻어내기를 바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말씀 묵상을 통하여 성령께서 새롭게 하심으로 새로운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