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갈라디아서 3장 10절 - 18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됨을 구약을 자유롭게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430년 뒤에 만들어진 율법에 우선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업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달려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언약은 율법보다 더 중요할까요? 왜 율법은 저주일까요?
철학과 신학 그리고 논쟁에 관해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바울의 말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순종하기는 어렵지만 그 말과 표현은 쉽고 단순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율법이 저주라는 것은 바로 그것을 지켜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우선하는 하나님의 언약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삶을 사시는 동안, 율법을 지키셨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완벽히 율법을 따르던 한 사람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때문에 희생당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기만
하면 율법의 저주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한 것입니다.
내가 매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경험을 통해서 율법의 저주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비록 그것들이 좋은 기준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십계명중의 어느 한 가지 율법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나에게는 물질적인 우상이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으로 여자와의 간음의 죄도 저질렀으며 도둑질도 했습니다.
오늘 누군가 책상위에 놓아 둔 100원짜리를 훔쳤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흉을 반복적으로 봅니다.
남의 것에 자꾸 욕심이 생기는데 특히 비싼 펜이나 멋진 신발을 보면 그렇습니다.
차를 운전할 때면 모든 교통규칙을 다 지키지는 않습니다.
내가 규정이나 법을 어기는 것을 너무 과도하게 의식하다보면 우울증이 걸려 버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규칙들을 생각없이 대수롭지 않게 지키지 않는 것과 같이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아내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은 남학생의 부모와 대화하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며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웃으면서 차분하게 넘기지 못하고 하루도 인상을 쓰지 않고 약속을 모두 지키는 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저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계속해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나의 죄와 함께 팽개쳐진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이며 그 스스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율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의 희생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나의 저주의 율법을 깨뜨리셔서
나를 의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다른 어떤 누구의 약속도 믿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약속만은 믿습니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를 보면 볼수록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셔서 어둠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으며 또한 성령과 그를 믿는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적용 :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 보다 지키는 것이 더 많아 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사랑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시고 생각없이 약속을
남발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키기를 원하는 약속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