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사도행전 12:20-25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불의한 정권에 의해 순교당한 야고보 사도에 이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 베드로마저 투옥되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당면한 문제 앞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간절함에 빛이 비쳤고 철통같은 감옥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이 일을 직접 당한 베드로조차 옥문을 나서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가 초대교회 발원지인 마가의 집에 당도해 문을 두드렸으나, 간절히 기도하였고 현재도 기도하고 있던 그들조차도 베드로의 귀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안디옥교회에서 구제헌금을 가지고 온 바나바와 사울 일행이 도착했다.
자신들이 그토록 천시했던 이방인들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교회에서 가져온 헌금이었다. 민족이라는 장벽을 넘어선 사랑이었고 위태로웠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였다.
정치적으로는 유다왕국에서 생산되는 양식에 의존하였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화친을 청해오게 된다. 당시 큰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떨어진 그들은 왕국의 실력자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애를 썼고, 화친이 성사되었다. 이에 교만해진 헤롯은 경제조약을 맺는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그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있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아첨의 말들을 쏟아놓았다. 심지어 ‘신의 소리’라며 한껏 치켜세운다. 백성들의 연호에 고무된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였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 먹혀 죽으니라” 23절
교회를 핍박하면서도 승승장구하던 헤롯이었다. 모든 것이 잘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누가는 그의 죽음을 단 한 줄로 기록했다.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이름 모를 벌레에 먹혀 죽었다.”
한때 모든 권력을 쥐고 천하를 호령하였던 한 인간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바로 뒤이어 누가는 에필로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기록했다. 권력의 무상함과 말씀의 흥왕을 대조를 이루며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세월호 일 년을 맞으면서 아직도 진상조사가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는 모든 정치가 경제라는 권력 앞에서 정의마저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외면하고 살아있는 자들만을 위한다는 정치의 속살을 보면서 현대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우상으로 우리 삶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경제라는 우상’을 보는 것이다.
헤롯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엄히 말씀하신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 보다 앞서지 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임을 잊지 마라.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의 특징은 세상의 경제논리인 덧셈 뺄셈의 신앙이 아니라 어려운 중에도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었던 안디옥교회의 곱하고 나누는 신앙임을 배우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