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1-9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맞습니다. 주님 저를 꾀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제 자신이 항상 누구를 꾀어내려 했습니다.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어리석은 덕애야" 이렇게 불러봅니다. 약합니다. "바보 덕애야" "멍텅구리 덕애야"
저를 포기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일때, 안타깝게 딸이 수고해줌으로 간신히 우리들교회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저를 죄 속에 있어도 벌도 안받게 하심으로 버리시려다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거지요.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 자체도 이렇다하게 한 것이 없으니 바리새인도 못되지요. 듣고 믿음으로 이제 조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잊지요. 항상 잊고 가끔 생각납니다. 복음이, 구속사가 가끔만 생각납니다.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나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육체로 마칠 일이 생깁니다. 큐티인 묵상간증도 여섯번 했고, 큐티나눔에도 올리고 해도 조금만 피곤해도 올리고 싶지 않고, 요즈음은 게으름으로 티비에 눈을 고정시킨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 저것 하면 안된다고, 나는 움직이기만 하면 죄를 짓는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있으려고만 합니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라고 주님이 물으신다면.. 이 게으름속에서 허우적대는 시간도, 죄를 보느라고 더 혈기가 났던 시간도, 사랑이 없어 흉내만 냈던 시간들도 헛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듣지 않으면 믿음이 금새 없어집니다. 어제 회개했어도, 엄청 큰 회개를 했어도, 오늘 또 짓는 죄가 있습니다. 계속 듣는 믿음에서 입니다. 우리 목장 가운데서, 우리 가정 가운데서, 우리 학교 가운데서 능력을 행해주시는 이가 하나님 이십니다. 성령이십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의 행위가 아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큐티인 본문해설에 나와있습니다. 제 가상한 믿음도 의로 정해주실까요? 오늘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지금 좀 지질해도, 저를 싫어하는 이들이 진짜 싫다고 말해도, 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목자로서 열등감이 들때도, 휘문체플에서 예배를 위해 안내하는 제가 판교채플에서 안내하는 집사님의 안내를 따르기 싫어집니다. 그래도 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 입니다.
목자로서 열등감이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제일 사랑이 없고 믿음이 없는 자는 저 입니다. 잘난척만 잘하고, 특히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8. 또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모든 행위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아브라함 덕분에 우리도 복음을 들을 수 있었듯이, 새터민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쭈뼛대며, 특히 오늘처럼 아침부터 제가 잘못한 일을 지적받은 날은 저 때문에 복을 받게 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한을 미리 아시고 저와 미리 온 새터민 학생들때문에 모든 북한 성도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저희는 목사님과 함께 복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욕해도 우리 공동체와 목사님은 욕을 안했으면 합니다. 복만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복이 아니라 팔복을 받아야 합니다. 잠깐의 복은 금새 없어진다는 것을 아니까요. 천벌을 받는 복을 자녀와 목원과 새터민에게가 아니라 제게 내려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