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갈라디아서 2장 11절 -21절입니다.
바울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한 뒤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유대인의 관습에 대한 위선과 베드로를 대면한 일에 관해 말합니다. 바울은 베드로
에게 어찌하여 그가 이방인과 같이 살면서 이방인들이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유대인과 같이 살기를 원하느냐고 책망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율법을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역설하고 율법의 행위로 의로움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었다고 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두려움이 없을까요?
우리학교의 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몇몇의 교사들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내용들을 제출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의 이상적인 생각들을 잘 조직하고 프로그램화한다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휴머니스트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본래 악하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의와 자기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러 온 교사들이었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일하게 되어서 기쁘고 학교 발전을 위한 의견들을 제안해 주었으며 반 근무가 하루 근무로
바뀐 것에 대해서 불평하며 구시렁대는 교사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 주에 있을
근무시간에 세 시간을 추가로 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런 만족감을 느끼는 교사들의
정서적인 지지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학기의 마무리와 시간에 쫓기면서 채용한 교사들 그리고 내년의 새 학년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
올해 내가 이룬 발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실수는 많았지만 발전된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내가 학교에서 부재중인 교장이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교사들과 학생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특정 교사들과 학급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전체적으로는 함께 하는 교장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나의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인 존재가 크게 부재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학교는 겪지 않아도 될 더 많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표류했고 저는
그와 연관된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간과했던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는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현재 우리가 가진 목적과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서 더 많이 대화를 하고 그 주제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공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20절)의 말씀을 실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실패한 이유입니다. 바울은 그 자신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셔서 그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안에 살게 했으며 그것이 그가 두려움이 없이 행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은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만나고 당당하게 대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는 사람
들을 격려했는데 이는 바로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나에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당신이 내 안에 거하셔서 나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우리 학교에 당신의 사랑과 조화로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해 주셨던 제대로 된
모습의 나 자신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