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인내
갈라디아서 1:11-24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때마다 잠깐씩 이라도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에 뜻을 구하기 위해 힘쓰기 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 복을 달라는 식의 기도였다. 혹 기도를 안 하면 복을 못 받을까 하는 기도였다. 물론 그런 나의 모습이 불쌍해서 들어 주시기도 하신 기도도 있다. 뜻을 구하기 보다는 내 뜻을 하나님께 알리기에만 바빴다. 중국에서 사업할 때 가장 어려웠던 사람은 처음 중국에 진출한 한국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과 뜻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내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에 문화는 전혀 생각 안하고 자기 생각 자기 뜻만 주장 한다. 그럴 때 나는 대화를 포기하고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나중에 당할 것 다 당하고 돌아오면 드디어 내 말이 전달 된다. 이렇듯 세상을 향한 내 뜻과 내 생각이 너무 가득해 하나님에 생각과 뜻이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내 뜻이 앞선다. 하나님에 뜻을 구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11-12)
나에게 은혜를 받으면 꼭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사람들에게 내가 은혜 받은 것을 알리기 원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 깨달아도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해서 날리다. 깨달은 것을 적용하여 내 삶으로 만들기 보다는 나는 이것도 알고 있다 라는 사실을 사람들에 알리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칭찬해 주는 칭찬에 목말라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알고서 적용 못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동일하게 나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문이 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 일을 해명 하느라 바쁘다. 한명 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무고함을 알리기 원해서 이다. 바울은 그 모든 것에서 3년을 참았다. (17-18) 해명 하지도 않고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작년에 거래 했던 태국 바이어가 뒤에서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을 전해 들었을 때 또 최근 파트너와 헤어진 것 등의 사건을 통해 나는 피해자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말 하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돌아보면 마치 누구 때문에 내가 피해자라는 식으로 살았다. 이제 내 죄를 먼저 보겠다
또 조금 알기만 하는 깨달음이 내 속에 적용 되어 있지 않아 아직 내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나는 그것을 아는 지식으로 의로워 지는 것처럼 행동 했다. 교회에 큐티나눔에 큐티를 올리고 조회수가 높으면 기뻐하는 나를 본다. 정말 사람에게 너무 인정 받고자 한다. 인정받고 싶고 내가 영광 받으려는 마음이 너무 크다. 삶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 (24)
요즘 많이 외롭다. 참 신기하게도 외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때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라는 것을 아는데 잘 안 된다. 이것 또한 내려 놓고 하나님에 은혜만을 구하겠다.
주님께 인정 받는 기쁨이 너무 커서 사람들이 주는 인정에 관심이 없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