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6일 토요일
사도행전 10:34-48
“외모를 보지 아니 하시고”
일간에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언론에 마녀사냥 식으로 매도당했다며 미모가 ‘김연아’나 ‘손연재’ 급 정도였으면 적어도 그렇게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가십거리가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몸매가 착하다” “과거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못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등 신조어가 만연한 시대이다. 이처럼 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오늘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행전 10:34-35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는 베드로의 고백은 그의 가슴 속에 철옹성 여리고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국경과 민족이라는 막힌 담이 무너진 역사적 현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조건을 따지지 않으신다. 차별 없이 부르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온 땅에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신 일과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였다. 이어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이 떨어지자 말자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기도하며 기다리며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했던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께서 오신 것이다. 이때 욥바에서 베드로와 함께 동행 했던 할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랐다고 했다. 그들은 믿음과 함께 할례가 구원 받은 증표라고 지금까지 믿어왔기에 그들의 놀라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이름은 ‘예수’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시라” 마태복음 1:21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수태고지를 하실 때, 전해주신 ‘그 이름’이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이 이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하신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다. 주님을 영접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이다.
송명희 시인의 ‘그 이름’ 찬양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