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2일 화요일
사도행전 9:32-43
“두루 다니다가”
32 그 때에
교회가 핍박 가운데서도 든든히 서가고 있을 때였다. 베드로는 흩어진 교회를 돌보기 위해 순회하고 있었다. 룻다에 이르렀을 때, 팔년 동안 중풍병자였던 애니아를 만나게 된다. 병든다는 것은 성도에게도 피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한 인생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워 자유케 했다.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는 신유의 은사의 출발을 분명히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자신을 향해 쏟아질 찬사를 주님께로 돌렸다. 이것은 40년 동안 성전 미문에서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지체장애인을 일으켜 세운 사건과 동일하였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6
오늘 중풍병자의 침상이 바로 룻다의 성전 미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표적을 통해 주께로 돌아왔다. 팔년을 자유를 잃어버린 인생에게 회복을 선언했던 이 시간, 이웃 동네인 욥바에서는 슬픈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칭송 받던 다비다라고도 하고 번역하면 도르가라는 여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평가하기를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 했다고 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였다.
한 여인의 죽음을 온 교회가 슬퍼했다. 특히 모든 과부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일에 모범이 되었던 여인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베드로가 인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욥바 교회는 사람을 보내었고 지체 말고 와달라며 간청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들이 내어놓은 것은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고 병들어 죽는 순간까지 만들었던 속옷과 겉옷이었다. 연약한 이웃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생활의 삼대요소를 말할 때, 衣食住(의식주)라고 말한다. 당시 옷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패션의 개념이 아니었다. 잠을 청할 때, 이불이었고 삶의 기초였다. 하나님께서 옷을 전당 잡을 때, 저녁까지 가지고 있지 말고 돌려주라고 말씀하셨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팔년 된 중풍병자와 한 여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향하여 예수의 이름이 선포되자 고치고 살리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자유가 선포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슬픔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힘주어 외쳤던 베드로의 외침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만 한다.
새생명축제를 통해 죽어가는 수많은 인생들을 향하여 외쳐야 할 말씀이다.
‘두루 다니며’ 죽어가는 인생들에게 외쳐야만 한다.
“아무개야! 일어나라”
서울영동교회 5월 17일 오후 2시.
죽어가는 인생들을 일으켜 세우는 욥바의 현장이 되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