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사도행전 9:26-31
“위로의 아들 바나바”
다메섹 광주리 탈출사건이 있은 후, 삼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중동의 세월을 보낸 사울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으나 그를 두려워하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스데반의 순교현장을 보았던 그들로서는 사울의 회심을 받아드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바나바가 등장하여 그를 위하여 변호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 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도행전 9:27절
재야에 묻혀있던 바울을 하나님 나라 전면에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바나바였다.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다. 누가는 ‘위로의 아들’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 바나바의 이름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그를 통해 사도바울을 부르셨고 이방선교의 닻을 올리셨다. 바나바의 이름 속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가 기록된 것이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에서의 전도가 찾아오는 자들을 향하였다면 이제 바울은 찾아가는 선교를 시작하였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도행전 9:28-29
헬라파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인들을 죽이겠다고 살기등등하여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울이 복음 전도자로 변신한 사실도 받아드리기 어려웠거니와, 자신들을 향해서 거침없이 말씀을 전하는 변절자를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웠다.
바나바의 주선으로 기독교공동체에 들어오긴 했으나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눈초리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고, 적대관계로 돌아선 유대교 신자들에게도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그를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지 못하게 하였다.
그가 향한 곳이 바로 다소였고 땅 끝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살기등등해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달려가던 사울이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회심하게 된다. 그는 즉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러한 사울에 대해 당혹감을 넘어 적개심을 갖게 된 전통유대교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모의를 한다. 성문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다리며 사울을 죽이고자 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밤중에 성벽에 사울을 광주리에 매달아 밧줄로 내려서 탈출을 돕는다. 구원의 밧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천년의 세월을 넘어 나를 향한 생명줄이었다. 사울의 도피를 도왔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제자들을 천국에서 만나고 싶다. 오늘의 바나바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의 섬김을 통해 사울이 바울이 되어 이방인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들의 이름 없는 수고로 이천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의 내가 있다.
‘조연 없는 주연은 없다’는 말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긴 저들처럼 연약한 지체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