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8일 금요일
사도행전 9:10-19a
“그 때에”
오늘 본문은 ‘그 때에’로 시작한다. 혈기왕성한 한 젊은이가 갑자기 닥친 실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빠
졌을 때였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길을 열고 계셨다.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셨고, 사울이 머물고 있는 직가라고 하는 거리 한 집을 지정하셨다.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고 명령하셨다.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12절
사울은 삼일간의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기도 중에 자신을 찾아온 아나니아라는 사람에 의해 안수를 받자 다시 보게 되는 장면을 미리 보게 된다. 절망 중에 빛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아나니아 역시 환상 중에 주님을 만난 것이다.
그냥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사울을 고치시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들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일갈하면서 내뱉은 말이 떠오른다. 광야에 흔한 돌을 가리켰다. 이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식을 만드실 수 있으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랑의 역설적 표현이었다. 송구하게도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 세 번이나 ‘다시 본다’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사물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다시 본다는 뜻이다. 절망 중에 다시 보게 된 사울은 바울로 즉, 큰 자에서 작은 자로 거듭나게 된다.
살기등등했다는 말은 자신만만했다는 말이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신념의 한 사람이 이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나니아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이 자는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곳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온 자라고 했다.
누가는 이 대화를 통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주님을 소개한다. 아나니아의 부정적인 시선을 순종이라는 통로를 통해 긍정적으로 바꿈으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사도행전 최초의 수신자였던 ‘데오빌로 각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 사울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적대적 관계였던 아나니아와 사울의 운명적인 만남은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케 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이었다. 그동안 민족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던 복음이 이방을 향하게 하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오늘 하룻길에 수많은 만남이 있을 것이다. 나를 통해 흘러가야할 복음의 강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기대해본다. 갈바를 알지 못하는 하룻길이지만 내가 아는 분명한 것은 그곳은 낮은 곳이다. 오늘 미천한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