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이야기는 잘 해석이 안 되곤 했다. 좋게 봐야 하는 건지, 나쁘게 봐야 하는 건지, 나실인인데 그 인생은 왜 그렇게 방탕하고 불순종하고 또 불행하고 비참하게 끝나는지...
본문을 보니 삼손은 먹는 것을 좋아했다. 단 것을 좋아했다. 여자를 좋아했다.
이런 점은 나와 정말 비슷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나실인으로 바쳐졌다. 민수기 6장의 나실인 규례를 보면 나실인은 일정 기간 동안만 서원을 지키면 되는데, 그렇게 육의 소욕이 넘쳐나는 삼손은 평생을 나실인의 규례를 지켜야 했다.
어쩌면 어릴 때 부터 나실인의 규례를 강조하는 부모님 밑에서 크면서 오히려 욕구 불만이 쌓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삼손은 모범생이 아니었다. 자기의 욕구에 대해서 거침 없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신체적 힘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동물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
이런 삼손의 이야기에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나는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육의 소욕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의 육의 소욕을 통해서, 삼손의 독특성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 내 욕구를 따르는 것을 죄악시했다. 내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내 열심을 내었다. 금욕주의자였다. 하지만 그 반대 작용으로 욕구를 억누르지 못할 때는 완전히 퍼지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쉬지 못했다. 죄책감 때문에. 욕구를 억누를 때도, 욕구를 분출시킬 때도 나는 쉼이 없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다는 데 나는 왜 이렇게 자유를 못 느끼는지 너무 답답했다.
목장에서 내게 주시는 적용은 일원화였다. 욕구를 누를 때의 나나 욕구를 분출시킬 때의 나나 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였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내 독특성을 내가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적용은 내 고유한 것을 더 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은 그런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을 내가 신뢰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