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사도행전 7:1-16
“약속하셨으며”
스데반은 거짓 증인들의 고소에 의해 산헤드린 법정에 섰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는 그들의 질문에 한편의 설교로 답변을 대신했다. 자신을 유죄로 몰고 가는 법정에서 변론을 대신해 오히려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스데반은 오늘만을 바라본 자가 아니었다.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오늘을 비추었다. 그리고 내일, 모레를 바라보았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 거처했던 강 건너 메소보다미아를 먼저 언급했다. 그곳은 우상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타락한 도시에서 한 사람을 뽑으셨다. 그가 아브라함이었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를 따라 여행하던 중, 약속의 땅이 아닌 하란에 정착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지금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발 붙일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시지 않았다. 유랑민의 생활을 하던 중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났지만 그의 아들 야곱을 통해 애굽에서 430년을 보내게 하신다.
모세를 통해 출애굽과 홍해를 건넜다. 하지만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광야 40년 생활이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향해서 걸어갔지만 그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붙들었던 것은 단 하나의 ‘단어’였다.
‘약속하셨으며’ 5절
스데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곳은 산헤드린 법정이었다. 율법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지식들로 무장한 제사장 무리 앞에서 거침없이 변론을 이어갔다. 지금 너희들이 발붙이고 있는 이 땅이 아브라함이 그토록 대망하였던 약속의 땅인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을 히브리서 기자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했다. 성도들의 삶도 역시 이와 같다 하겠다. 우리 역시 내일이라는 미지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갈 바를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삶과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부르심에 따라 두 종류의 사람이 여행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쫒아갔고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갔다. 이 점이 그들의 인생의 성패를 좌우했다. 말씀을 쫒아 갈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따라갈 것인가? 오늘 나와 제사장 무리들에게 던지시는 하나님의 질문이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너희 조상들이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던 것처럼, 너희들이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요셉은 구약의 예수님이시다.
스데반의 설교 속에서, 약속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본다. 그리고 구약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님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는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한 편의 서사시로 들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