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8일 화요일
사도행전 6:8-15
“균형”
오늘 등장하는 스데반은 원래 구제를 위해서 세워진 일곱 집사 중 한분이시다. 그는 집사가 되어서도 평소 하던 대로 복음 전도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도행전 6:8절에서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소개한다. 그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구제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열렬한 전도자였고 사도 못지않은 능력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때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던 이른바 자유민들이 있었다. 비록 그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전통적인 유대교를 고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열렬한 율법의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수와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이 격화될 때에는 집회가 시작되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들과 논쟁이 벌어졌다. 스데반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당할 수가 없었다.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논쟁이란 것은 서로의 다른 의견을 내놓고 진리를 향해서 접근하는 것이지만 일방적으로 밀린 그들의 마음에는 증오가 싹텄다. 꼭 이겨야하겠다는 고착된 생각이 사람을 매수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48년 동안 건축하고 있던 성전은 그들의 마음과 자신들의 재산을 드린 거룩한 곳이요 믿음의 상징이었다. 거짓 증인을 내세웠다. 예수님을 모함할 때 썼던 그 방법을 동일하게 사용했다. 자신들의 자부심이었다.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며 고발했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다는 자여’
주님을 심문할 때, 사용했던 외침이 메아리처럼 다시 들려왔다.
누가는 당시 일방적으로 심문을 받고 있던 스데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는데,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떠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누가보아도 범상치 않은 얼굴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한번 마음에 싹튼 증오는 천사와 같은 얼굴의 스데반을 보지 못했다. 질주하는 기차처럼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하는 일의 중심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향한 구제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전도자의 사명을 놓치지 않았다. 스데반은 ‘사랑과 사명’이라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성도의 길을 걸어갔다. 진리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어려운 일이 많으나 ~’
어떻게 겸손히 섬기는데 어려운 일이 많은가?
스데반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찬송가 347장을 불러본다.
누가는 거짓 증인들의 성토하는 격랑의 외침 속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스데반의 평온함을 묘사했다. 영원의 나라에 닻을 내린 스데반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