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5일 토요일
사도행전 5:33-42
“그 이름을 위하여”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행전 5:41
‘나를 따르라’는 명령 한 마디에 두말도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이었다. 나는 이 일을 순수하게 주님을 따랐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매력 있던 선생에게 자신의 인생을 투자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삼 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자들이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기 위해 골고다를 향하여 묵묵히 걸어가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막바지에 동상이몽에 빠져 있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자리다툼에 골몰했다. 종의 모습으로 섬겨온 예수님을 보았으나 그들의 관심은 높아지기 위한 논공행상에 있었다.
제자들과 동일한 모습을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밥 먹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예와 권세를 가졌으나 ‘그 이름’을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었다. 기득권이라는 보호막이 오히려 자신들을 가두는 철장이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며 가르쳤던 예수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베드로는 주님의 면전에서 저주하면서까지 부정하였다. 이처럼 한심했던 제자들의 오늘 모습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세 있는 산헤드린 법정에서 그들은 너무나 당당했다.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가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그들은 ‘그 이름’ 즉, 예수의 이름이 주는 부활의 권세를 보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 이름 밑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된 것이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들의 결론이었다.
이 한마디에 종교지도자들은 분노하였다. 앞뒤 가리지 않을 태세였다. 그때 존경받는 율법교사인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공회 중에 일어났다. 사도들을 잠시 밖에 내보낸 뒤 말하였다.
가말리엘의 이유 있는 설득으로 사도들을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채찍질 하며 협박하고 방면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고 고백했다. 나는 오늘 ‘그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자처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되물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