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0: 16) "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질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듯 나의 곤고로 말미암아 근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곤고(困苦)는 어렵고 고생스러움, 곤란하고 괴로움, '고통'과 유사어이고 영어로 hardship이라고 한다. 나에게 현재 가장 곤고한 것은 아직도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학대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50 평생을 살아온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한도 끝도없이 내 스스로를 지적질하고 말씀의 채찍으로 나를 비하하고 우울해 왔다. 이것이 확대되어 아직도 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나를 대하듯 가시나무처럼 지적질을 해 대는 것이리라. 아이들중에 작은 아들 지환이에게는 상당히 많이 이런 지적질이 줄어들었는데 식당을 하면서 늘 같이 붙어 있는 아내에게는 좀처럼 이 가시같은 지적질과 분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아직도 노예근성속에 얽매여 살고 있는 내 자신을 주님은 안타깝게 바라보시고 근심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도 내게는 음란, 조급함, 이기주의, 돈을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교만, 비방(지적질), 절제하지 못함, 사나우며, 배신하며, 쾌락을 무지 좋아함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의 고통이 나를 짓누루고 있지만 이 근본 죄의 뿌리는 내가 아직도 나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과 마음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열등감이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과 말씀을 통한 성령 하나님의 인도로 그 상처가 많이 치유되어 극복되어 가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자신 스스로 나를 정죄하는 내 자신을 접하게 된다.
내가 바로 아비멜렉이다. 4남 2녀중 재혼한 가정에서 셋 째 아들로 태어났다. 내 위로 두 형과 누나가 각각 재혼하면서 한 식구가 되었고 내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나온 첫 번째 자식이다. 우리 형제들 모두는 되물림되듯 복잡한 가정력으로 인한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갖고 있으며 내가 형들에게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내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되물림하였다. 그로 인해 1살 차이나는 내 여동생은 아직도 나와 대화하는 것을 어색해 하고 남동생도 큰 아들 지산이가 나를 꺼려하듯 나를 꺼려한다. 가시나무같은 많은
상처와 분노가 두 동생에게 찔림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것의 출발점은 부모로부터 되물림받고 복잡한 가정사에서 자연스럽게 상처와 더불어 형성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짓눌려 살다보니 심적인 중압감속에서 마음이 위축되고 자존감이 사라져 남들앞에 나서는 것이 꺼려졌고 낯선 사람들과 만나면 자신감이 없고 당황하여 말을 더듬게 되는 사춘기를 보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하기를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세뇌를 받았던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부모님의 성공의 척도인 공부는 항상 바닥을 쳤고 거기에다 자존감도 없고 말까지 더듬으니 대인관계가 원만할리 없다. 늘 외톨이가 되어 학교와 집을 오갔고 늘 집에 어딘가에 있던 음란 잡지를 보며 나 홀로 음란한 행동을 벗삼아 나의 불안하고 허한 가슴을 채우려 하였고 그 욕구를 채운 후에는 또 내 스스로 갖은 욕과 저주를 퍼부우며 정죄를 하였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심적으로 불안하고 피곤할 때 이런 음란한 마음이 더 들었고 마약 중독환자처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지고 마는 음란 중독자가 되어 갔다.
50평생 나같은 가시나무가 과실을 맺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죄책감과 열등감속에 반포기 상태로 나를 정죄하며 살아온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찌질한 인생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 삶을 나눈 지체나 공동체가 한 번도 없었다. 누구에게 나의 복잡하고 찌질한 가족사를 open하고 내 찌질한 생을 나누겠는가? 나눈다고 해도 무슨 유익이 있었겠는가? 나만 이상한 사람만 될 뿐이지.
2월4일 말씀으로 내게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로 내 죄의 뿌리를 보기 시작했고 이렇게 우리들교회 큐티나눔방에 내 죄와 상처를 나눌 수 있게 주님이 인도하여 주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묶여가고 싶은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런 부끄럼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주님의 은혜로 나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런것을 상처가 별이 된다라고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의 오픈을 통해 나의 죄가 큐티나눔방에 목매임을 당하면 그 죄의 힘이 눈에 띄게 줄어 든다는 것이고 나는 그럴수록 자유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의 오픈으로 다른 분들이 어떻세 상처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조금도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이 너무도 편하다. 이것이 은혜가 아닐지? 마치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처럼 내속에 50평생 꽁꽁 묶어 놓았던 상처받은 내 자아를 낱낱이 풀어 헤치는 기분이다. 그 은혜 덕분에 내 인생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가고 있고 마음깊이 내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이제는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식구 모두를 위한 애통함의 기도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나를 아직도 내가 소유하고 있는듯 착각하여 내 스스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 때문에 주님이 마음에 근심하신다는 말을 오늘 말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지나친 교만도 문제지만 자기학대는 더 안좋은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정죄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도 없으리라.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으로 과거에 내가 찌질했던 더럽게 살았던 중요한 것은 오늘 나는 주님의 은혜에 거하며 가시나무가 열매맺는 과실을 맺기 위해 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당하고 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다. 상처받아 허물어지고 찢겨 너덜너덜 더럽혀진 나를 주님이 오셔서 일으켜 세워 주셨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와 상처를 씻겨 주셨다. 온전한 주님의 열매맺는 과실이 되기까지는 주님의 시간이 필요하고 나는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주님의 마음에 근심시키는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때 예전처럼 나를 정죄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있는 회개를 주님께 드리고 아무일 없었다는듯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건강한 그리스챤의 모습을 꿈꾸며 오늘 하루도 화이팅!!
(적용/결단)
1) 오늘 말씀을 근거로 내 스스로 욕하고 무시하는 언행을 삼가하도록 하겠다.
2) 내일 새벽기도 시간에 특별히 형제들과 조카들의 구원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저에게 김양재 목사님과 우리들교회 공동체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와 우리 가정이 큐티나눔과 목장예배를 통해 우리들교회와 연합할 수 있게 날마다 만나와 같은 말씀을 내려 주셔서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같은 가시나무가 열매맺는
과실나무가 될 수 있다니 정말 꿈같은 현실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이거에 만족하거나 아주하지 않고 먼저는 내 가족들 구원을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애통하게 은혜내려 주옵시고 다음은 내 이웃과 주변이들의 구원을 위해 몸과 마음 정성을 다하는 주님의 사랑하는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옵소서. 주님의 은총안에서 십자가의 도를 가지만 설사 제가 넘어지더라도 내 스스로 정죄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바로 온전한 회개를 통해 주님께 다시 나아갈 수 있게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정죄감에 사로잡혀 원수 마귀의 꾐에 빠져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죄를 다시는 짓지 않도록 말씀으로 날마다 소성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