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2일 수요일
사도행전 5:1-11
“바나바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재야에 묻혀있던 바울을 하나님 나라 전면에 등장시킨 인물이 바나바였다.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다. 누가는 ‘위로의 아들’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 바나바의 이름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그를 통해 사도바울을 부르셨고 이방선교의 닻을 올리셨다. 바나바의 이름 속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가 기록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아마도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헌신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듯 사람들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던 이기심이 허물어졌다. 큰 무리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바나바의 헌신에 마음이 끌린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재물을 팔았고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 그리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라고 가장했다. 그는 명예와 부를 동시에 갖고자 했다. 이들 부부의 이 같은 거짓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부부 모두가 세 시간 차이로 세상을 떠나는 죽음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이성의 실패를 야기했던 아간의 행위가 떠올랐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할 헌물의 일부를 자신의 천막에 땅을 파고 숨겼다. 대승으로 고무되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 죄가 들어오자 패배를 당하게 된다. 한 사람의 죄를 공동체 전체의 죄로 간주하셨다. 제비를 뽑고 아간이 선택되었고 그의 일가가 투석형에 처해졌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신 것이다.
초대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편견이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였다.
외부적으로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그들은 두려움이 사라졌고 담대히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자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다. 그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된 헌금이 등장하게 된다. 베드로는 이 행동을 ‘함께 꾀하여’라고 했다. 이것은 일시적 충동에 의한 죄라기보다는 계획적인 범죄임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계의 말씀이 기억나는 대목이다.
초대교회 하나님 나라의 거룩을 위하여 거짓된 행동에 대해 엄한 판결을 내리셨다. 이 기준은 오늘날도 변함이 없으시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오래 참으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우리들의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기록 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