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7일 금요일
사도행전 4:1-12
“그 이름(2)”
솔로몬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구약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모든 선지자의 글을 인용했다. 듣는 청중들을 일깨웠다. 너희들은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너희가 그렇게 신봉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백성들이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날 것을 요청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옛 말씀을 끄집어냈다.
창세기 12:3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예수이심을 알렸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라고 하셨다. 바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셨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아직 설교가 마치기도 전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이 몰려왔다. 삼천 명이 되는 사람들이 교회로 편입되고 그들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차였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정상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민심이 급속도로 이반되자 급히 사설 군대를 동원한 것이다.
당시 소위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나 한 번도 성전에 걸어가지 못했던 연약한 인생이 고침을 받았다는데 있지 않았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행전 4:7
그들도 부정하지 못했다.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자를 늘 상 보아왔기에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질문은 제자들의 입에서 자기들이 죽인 예수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야만 그들을 잡을 명분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때 베드로의 고백이 놀랍다. 그는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증언하였다. 주저하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았다. 거침이 없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던 불행한 한 사람의 치유가 단순한 고침이 아니라고 했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시 최고의 지식층이요 종교지도자들 앞이었다. 베드로의 세 번째 설교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담대하게 선포된 것이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9-12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이름 ‘그 이름’ 예수가 적들의 심장부에서 선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