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5일 수요일
사도행전 3:1-10
“자유 예배의 회복”
바로 자기 앉은 자리 지척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고, 레위인의 찬송 소리가 들렸다.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예배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40년 동안 미문이라는 곳에서 변함없이 구걸하고 있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도행전 3:2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그 자리에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앉아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시 기도를 위해 성전으로 향했다. 성전을 수시로 다닐 때마다 스쳐 지나쳤던 한 영혼이었다.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주목하였고 ‘우리를 보라’고 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자유롭게 성전을 드나드는 그곳에서 그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껌 딱지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다. 배설하는 일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오랜 시간 구걸을 해야 했기 때문에 물조차 마음껏 먹지 못했을 것이다.
호구지책으로 택했던 그 자리였다. 누군가 사람들에 메어져 그 자리에 올 수 있었던 지체장애인이었다. 그의 나이가 40세라고 했으니 아마도 수십 년 이상을 구걸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인생이 그와 똑같다. 주님을 몰랐던 때는 차치물론하고 주님을 안다고 하는 지금 나의 예배는 어떤 자세일까? 10분 대기조처럼 드려지는 예배가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고 토막예배 드리기가 일수이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미문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음에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동전을 던졌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오늘 그 자리에 주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셨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3:6
그는 동전 한 닢을 구하였으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이것이 예배이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사도행전 3:10
성전을 드나들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또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란 말이 언어적 수사가 아니다. 돌아온 한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가 열린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지난 날, 내 손을 잡아 일으키신 주님을 본다. 참 자유자가 된 그날을 기억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한 생명을 살리셨다. 오늘도 나의 걸음을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영혼을 스쳐 지나치지 말라고 하신다. 나의 오른손을 기다리는 영혼을 향해 손을 내밀기를 원하신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위해 멈춤과 손 내미는 역사를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