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사사기 6장 11절 - 24절 말씀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다가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희생제를 준비할 것이니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제물을 태움으로써 표징을 보입니다.
기드온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여호와는 화평이시로다.’ 하고 기립니다.
왜 하나님은 숨어서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을 부르실까요?
왜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표징을 받기 전에 희생제를 준비할까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의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찌 이런 고통에 시달리게 하십니까?
우리가 조상들에게 들었던 이적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본문 13절) 하는 내용이고
또 다른 결론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1)입니다.
나의 삶은 미디안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숨어서 포도주 틀에 밀을 타작하고 있는 소심한
기드온과 같이 고통과 상처와 상실의 큰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사기 위해서 나의 피를 팔아야만 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
냐고 물었습니다.
억울하고 분노에 찬 감정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그 당시에는 볼 수 없었고 또한 보지 않았던
것은 그 고난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려 허락하신 고난의 상황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안락한 삶에서 저는 하나님에게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직 나의 편안함과 쾌락을 향해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힘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는
하나님을 향해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나를 낮추는 사건을 통한 겸손의 관점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 나의 순종을 원하셨지만 그 분이 받은 것은 대부분 불순종과 의심
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믿음으로 부르셨지만 나는 거부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꼭 가야 할 곳이 있었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의 삶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을 외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만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세상적인 약속 때문에 출발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일이 기억조차 나지를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몸을 돌이켰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일할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한 형제를 면접 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지나온 긴 시간에 대한 간증을 들으니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 형제를 내가 있는 학교에 지원하게 하셨는지 말입니다. 면접을 보는 내내 왜 그런지를 생각
했습니다. 이 믿음의 형제가 그렇지 않은 다른 지원자들보다 더 적임자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기도 중에 있습니다. 나와 그 형제의 느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전에 본 적이 없는 이 형제가 보여준 조용하지만 평화로운 자신감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 형제와 함께 하시며 그를 지지하는 것일까요?
내가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우리 학교에 보내신 것일까요?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면접에서 보여준 그의 평화로움이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불태워 버리는 내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표징일까요?
제게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일주일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집중하며 기다리는 일주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한 결론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도록 잘 전달해야 합니다.
면접을 한 믿음의 형제와 저를 나란히 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뜻 안에서
화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