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요일
사도행전 2:43-47
“復興 -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니라”
소통이 시작되었다. 언어가 통일 되자 하늘과 땅이 이어졌다. 그러자 주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했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기도가 시작되었고 기도에 힘썼다. 기도하기 시작하자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감격하였고 그들은 헤어질 수가 없었다.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네 것 내 것의 경계선이 허물어졌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강요된 모임이 아니었다. 자발적인 헌신이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물질이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았다.
성전에서 대규모 부흥집회가 열렸다.
마음을 같이 하였다. 불협화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모이기를 힘쓰게 되고 떡을 함께 나누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교제가 풍성해졌다. 너와 나라는 벽이 허물어졌다.
이것은 강요된 친밀감이 아니었다. 연인들처럼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천국의 모형이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초대교회를 떠올리면 된다. 이것이 사랑이고 하나님 나라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췄다고 한다. 주일학교의 수가 급감하였다며 한국교회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끝 모르는 추락을 염려하기도 한다.
문제가 생길 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교회가 돌아 가야할 기본은 무엇인가? 부흥의 조건을 말하라고 하면 오늘 등장하는 ‘힘썼다’라는 단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b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행 2:46a
초대교회는 기도하기를 힘썼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썼다. 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자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다. 더 가지기 위해 살던 자들이 더 나누기 위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었다. 진정한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