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사사기 4장 1절 - 10절 말씀입니다.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악을 행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그들을 20년 동안이나
압제합니다.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900대의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여선지자 드보라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이끕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서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 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갈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를 바락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간다면 그도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바락이 한 대답 때문에
시스라를 처단하는 영광은 그가 아닌 한 여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900대의 철 병거일까요? 왜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 주기를 원했을까요?
나의 철 병거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준비가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가지 것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바락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저는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에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미루고 싶어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칭찬이나 신뢰는 내가
차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 내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께 신뢰를 얻는 일과 같다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책이나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그 비난이 곧 하나님이 나의
철 병거를 부수는 일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그 곳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당신이 함께 가 준다면 나도 갈께.” 라고 말하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어제 집사람이 이번 7월 달에 어떤 단기선교를 다녀올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것을
할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함께 가 준다면”의
하나의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밤, 정지훈 목사님이 저에게 네팔 단기선교를 함께 다녀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기 싫은 것을 감추려고 명확한 대답은 하지 않고 장황한
주변 이야기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수요예배에서 설교해 주신 목사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땅에서 쉼은 없습니다.”
“나와 함께 가 준다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기 싫다는 뜻의 다른 표현입니다.
나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합니다.
적용: 정 목사님에게 네팔 단기선교에 함께 하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 나중이 아닌 지금 즉시 당신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