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 11~13)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질문) 오늘 주님은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한것 같이 내가 주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우리 아이들이 나를 좇아 어찌하여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세상으로 가려 하는지 물으신다.
지난 50평생을 어머니의 인본주의 가치관으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다. 비록 30대초 아내와 더불어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였지만 이단교회에서 10여년 신앙생활에 젖어있던 내게는 일반 교회 목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 들릴리가 없었다. 그냥 죽지못해 다녔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이단교회를 나온 후 삶의 목표도 방향도 잃어버려 중국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게 되었고 마침 한중수교가 되어 어렵지 않게 중국에 진출하는 회사를 갈 수가 있었다. 비록 이단교회였지만 나는 이단교회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서원했었다. 그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잃어버린 내 삶의 목표를 나는 애써 돈 버는 것에 목표를 정하고 중국에 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이런 나의 허황된 욕심은 사기꾼의 올무에 쉽게 걸려 들었고, 당시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회사 명의로 그 사기꾼이 여러가지 사업을 시도한다는 명목하에 중국 조선족 교포들을 속여 돈을 빌렸고 그 빚쟁이들이 내게 찾아와 돈을 요구하면서 사기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당시 아내와 어린 큰 아들과 같이 있었는데 점차 신변의 위험이 느껴져 어떻게든 중국생활을 접으려하였고 사업자금을 핑계로 후배를 통해 어렵게 비행기 표를 구해 간신히 지옥같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경찰서, 검찰청에서 피의자,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명령을 받게 되었다. 알고보니 내가 명의를 빌려준 회사에 피해를 당한 조선족 교포가 본사를 고발한 것이었고 본사에서는 나를 걸고 경찰서와 검찰에 고소를 했던 것이다. 나는 경찰청,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사방이 에워쌈을 당한 절망감을 느꼈다. 이것으로 내 삶은 끝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생을 나를 위해 살아오신 늙은 노모가 생각이 났고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어머니를 보게 되어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럽고 죄송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당시 아내가 내 대신 학습지 관리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 관할지역에 학부모들이 그 옆에있는 교회를 많이 다닌다고 같이 교회를 가자고 권유하여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구원해 달라고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아내의 친언니같이 지내면서 우리를 이단교회에서 빼내준 분과 연결되었고 마침 그 분의 남편이 변호사라 나의 법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도움까지 맡아 처리하여 주셨다. 그분의 도움으로 회사와의 송사도 조선족 교포의 채무관계도 내가 500만원을 송금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 교회에서 1년간 제자훈련도 받았다.
그렇게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여러가지 알바와 직장을 거쳐 2000년도에 어떤 중견기업에 취업하게 되었고 그 회사 회장님의 신임을 얻어 2002년말 공장 survey 및 영업망 확충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파견나오게 되었다. 일이 전부였던 나는 또 일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고 점차 말씀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과도 멀어졌다. 그와 더불어 중국 사업에 관행처럼 여겨지던 음주가무에 빠져 살게 되었다. 더군다나 7~8년간 3개 공장을 짓는 책임자로 '갑'의 입장에서 살다보니 교만함과 혈기, 음란등의 죄악으로 내 육과 정신은 돼지처럼 탐욕으로 물들어 갔다. 지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여호와 보시기에 안좋은 죄악들이 그 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주님과의 첫 사랑의 감동도 선교에 대한 마음도 먼 얘기가 된지 오래가 되었다.
가족들이 상하이로 오기 불과 4개월을 앞두고 영업차 거래처를 방문했었는데 그곳에 근무하고 있던 옛 직장동료를 만났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라 들뜬 마음에 술 한잔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즐겨한다던 스카이프라는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는데 자신은 이것을 통해 중국어도 배우고 젊고 예쁜 중국여자도 만나 홀로 있는 외로움을 달랜다고 했다. 그 말에 혹해서 나도 바로 가입했고 바로 여럿 여자들과 중국어로 채팅을 했지만 기대만큼 재미가 없어 싫증을 느낄무렵 어떻게해서 미국유학생이라는 어떤 한국여자와 연결이 되었다. 우리는 이국땅에서 서로 외로웠고 얘기가 잘 통했다. 밤늦게까지 채팅하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외로웠던 나는 비록 인터넷채팅이었지만 그녀와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고 좋아하게 되어 급기야는 폰섹스까지 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이단교회에서는 이성간의 교제를 엄격히 통제하였기 때문에 당시 연예다운 연예 한 번 못해보고 아내와 결혼했던 나는 항상 묘령의 여자와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고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온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진짜 연애하듯 가슴이 뛰었고 그렇게 인터넷을 통한 나의 외도는 나의 모든 정신을 빼앗아 갔고 급기야는 어느날 새벽 그녀로부터 2시에 걸려온 핸드폰 통화로 나의 외도는 아내에게 발각이 되었고 나는 아내에게 당신을 좋아하지만 이 여자를 버릴 수는 없다고 얘기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미국으로 나도 가겠노라고 폭탄발언을 하였다.나는 정말 미국에 갈려고 회사에 사표까지 제출하였고 미국비자를 밟기 위한 절차를 문의하는 중 여름방학이라 그녀가 한국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는 그녀를 만난러 한국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한국 출장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녀를 만나러 한국에 갔다. 그렇지만 나오기로 한 그녀는 오지를 않았고, 나는 그녀를 찾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찾지 못하고 그냥 상하이로
허무하게 돌아가게 되었다. 아내는 그 친언니같은 누나의 소개로 우리들교회를 알게 되었고 주일마다 인터넷 설교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완전히 미쳐가는 구나하고 생각하였다. 한국에서 그녀를 못만난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또 왔다. 마침 아내가 옆에 있어 전화받기가 껄끄러웠지만 아내를 의식하며 화난듯 그녀에게 응대를 하였다. 그녀가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 놓기에 오기가 나서 그냥 아내들으라고 "이제 전화하지 마" 라고 말했는데 그녀가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알았어 이제 다시는 전화 안할께 그동안 고마웠어"하면서 전화를 끊는 거다.사실 그때는 전혀 그렇게 헤어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데...이런 일이 있고 난후 그녀와의 통화도 자연스럽게 안되게 되고 이상하게도 아내가 오히려 나한테 사과를 해서 내가 더 미안해져 다시는 그녀와 연락하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말을 하였고 사표를 제출했던 회사는 지을 공장이 아직 하나가 남아 있기에 회장님의 적극 만류로 사표는 다시 반려되고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거봐라 회장님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는 교만이 하늘을 찔렀고 중국 내수영업을 하던 나는 기사까지 딸린 차를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아침에 출근한후 몇 군데 업체 방문후 나머지 일은 밑에 직원에게 일임하고 사장님께는 보고도 않고
오후 3~4시쯤 퇴근하는 그야말로 막나가는 회사원이이었다. 관계, 질서는 안중에도 없었고 내 하고자 하는대로 계통도 밟지않고 임의로 처리후 보고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2년여가 지나고 나머지 한 공장도 완공이 되고 1년여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사고가 터져 상하이 공장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본사에서 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졌고 나는 한국 본사 영업부로 발령이 났다.자존심이 상한 나는 앞뒤가리지 않고 또 사표를 제출했다. 다시 회장님이 보호해줄 줄 알았지만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나를 누구도 구제해 주지않았고 나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처럼 실업자가 되었다.
도저히 내가 실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않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무렵 아내가 내게 한국으로 가서 취업자리를 알아보라 권유하였고 간 김에 우리들교회 예배를 꼭 드리라고 당부를 했다. 너무도 곤고했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들교회를 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목사님의 설교가 들리고 격동됐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참좋다 생각하고 있는데 새로 오신 분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광고에 마음속에서 한 참 망설이고 있는데, 오늘 아니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결단하고 일어서시라는 목사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일어서게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에 가서 교인등록도 하였고 목장도 소개받아 나가게 되었다. 목사님 말씀과 목장예배를 통해 잃어버렸던 내 자존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9개월여 동안 우리들교회에서 1:1제자 훈련도 받고 양육교사 훈련 받는 중간에 다시 상하이에 사업이 진행되어 상하이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문제로 김목사님과 상담도 하고 목자님, 목장식구들과 목장예배때 나누기도 했는데, 상하이 가서 인터넷 설교를 들으며 공동체에 묶여 살도록 처방을 받았고 목사님은 내 아내가 있기에 마음이 놓인다 면서 신앙생활 잘 하라고 당부의 기도까지 받고 상하이로 돌아가게 되었다.하기로 했던 사업은 투자자의 갑작스런 연락두절로 물거품이 되었고 현지에서 직장을 알아 보았지만 미국국제금융 여파로 한국기업들이
모두 철수하는 분위기라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어영부영 거의 2년여의 시간이 지났고 통장에 있던 퇴직금과 있는 돈이 바닥을 칠 무렵 교회에서 사귄 아내 친구로부터 분식집을 인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우리는 그냥 덥썩 감사합니다하고 인수받아 지금까지 5년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김정수의 지금까지의 연대기이다. 어쩜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과 그처럼 닮아 있는지. 내가 이렇게 곤고하게 인생을 방황하며 고난을 받으며 살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1절)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을 섬기듯 세상가치관으로 돈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을 받은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스라엘 민족처럼 불순종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모든 일이 최악의 상태로까지 진행이 되면 하나님께 달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고 그 때마다 나의 절규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사같은 분들을 보내시어 나를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은혜를 잊어 버리고 또 다시 죄악에 빠지는 악순환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시간은 물흐르듯 지나갔고 내 나이 50을 넘어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좌초위기에 있던 나의 가정이라는 배는 우리들교회라는 '섬'을 만나 위태위태한 난파위기에서 간신히 구원받을 수 있었다. 결혼 후 20여년 바알신을 섬기듯 출세를 위해 물불안가리고 살아온 나의 영향으로 우리 큰 아이는 지금 본문 말씀처럼 내 예전의 모습 그대로 주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고 바알을 섬기기 위해 세상밖으로 뛰쳐 나가려 애쓰고 있다.내가 가르친 허황된 출세욕에 현혹되어 눈에 보이는 부와 행복과 외모의 신을 좇아 섬기며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되듯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2개월전 우리들교회로 나를 부르시어 강권적으로 내게 말씀을 들리게 하신 이유는 바로 훼파되어 가는 우리 가정을 다시 세우고 특히 우리 큰 아들 지산이를 살리라는 이유로 잠자는 나를 깨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좀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어쩌면 완전히 세상속으로 빨려 들어 갈 수 있으니까 아직 내 품에서 돈 달라고 하는 이 시기를 정신 차리고 내적성전을 잘 중수하여 지산이를 비롯한 지환이 두 아들을 살려내라고 급하게 주님이 나를 일깨우신것이라 믿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로 두 아들을 쓰시고자 주님은 이제 내가 사사같은 사람이 되어 두 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어 주고 그들을 주께 인도하여 나처럼 허랑방탕하게 하나님의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말라고 내게 말씀하시는 것같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마침 50년전 오늘 나는 태어났다. 지난 3월에 50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내 어머니 생신을 기억해서 축하를 해줬고, 오늘 내 생일에는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예수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처음으로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나는 그동안 내 생일은 물론 아내, 아이들 어머니 생일등 모든 생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일 뿐 아니라 모든 기념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의미가 없으니까. 한 번도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 보지를 못했다. 모든게 저주스러웠고 힘들고 고생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있어야 그나마 행사하고 살 수 있을것 같아 돈을 숭배하며 살았던 것같다.
대회심 사건을 계기로 목사님 저서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음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죄, 슬픔, 죽음만이 존재하는 그리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는 음부의 세계. 그런 어둡고 캄캄한 음부의 세계에서 나는 점점 질식되어 갔고 답답해서 미쳐 죽을듯이 괴로워했다. 너무 힘들어 내 옆에 있는 내 아내를, 두 아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였고 점점 더 미쳐만 가서 그냥 놔두면 아마 이혼을 당하거나 아내나 두 아들에게 끔찍한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한지 2개월 그동안 주님은 나와 우리 가정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맛보게 해 주시고 계시다.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내가 거한 이곳 상하이에서 지금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대로 지켜 행하라" 고 말씀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의 은혜로 부활한 것을 증거하고 내 상처와 죄악을 낱낱이 공동체에 나누어 알리라고 하시는것 같다.
예전의 김정수라는 탐욕스러운 인간은 지금 죽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덧입어 오늘 나는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내 안에 아직도 내 옆구리의 가시같은 죄악들이 나를 찌르고 올무가 되어 넘어트리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자고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구원을 이루라고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험이자 연단의 도구이다. 나는 이 가시들을 품고 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은처럼 연단받고 금처럼 시험받아 정금처럼 나와 내 생애 가운데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어 나를 구원시킨 나의 사사들처럼 나도 사사가 되어 가난하고 환란받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살라고 하신다. 이곳에 말씀듣고 깨달아 우리들교회가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을 아직은 작고 미약하지만 이제부터 이곳에서 해나가도록 열심히 연단받고 준비하라고 말씀하심을 마음속으로 믿는다.
(적용/결단)
1) 오늘 가정 목장예배때 아내와 아들에게 그동안 잘 참아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 때문에 아파했던것 미안하다고 사과하겠다.
2) 오늘 가정 목장예배때 예수님 부활신앙에 대해 오늘 큐티내용과 매치하여 컴팩트하게 들려주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저와 우리 가정을 때에 맞는 사사들을 보내 주셔서 구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이제는 주님이 주시는 은처럼 연단받고 금처럼 시험받아 주님이 만족하시도록 합격해서 이곳에서 가난하고 환란받고 핍박받는 이들을 주님의 명령받고 도와주고 구제하는 자그마한 사사가 되기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불로 물로 강하게 연단해 주시기를 원합니다.정금처럼 나올 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