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일 금요일
마가복음 15:16-32
“나를 따르려거든”
한밤중 산헤드린 법정에서 신성모독죄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으신 후,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던 총독 빌라도에게 정치적 추인을 받기 위해 이른 새벽 법정에 서셨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며 정치범으로 몰아갔던 종교지도자들과 성난 군중들을 보며 빌라도는 정치적 결정을 하고 만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우선으로 생각했던 빌라도는 정의를 외면한 채, 군중들의 소요를 막고자 사형을 판결하고 말았다.
체포부터 형이 집행되기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판결과 함께 형이 즉시 집행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밤중 체포 되신 후,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반나절 만에 전격적으로 진행된 판결과 집행이었다.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마가복음 15:16
빌라도는 한 사람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온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것은 정치적인 퍼포먼스였다. 민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성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군중들의 마음에 편승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결정이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가복음 15:15
비난과 조롱이 넘실댔다. 불신자인 로마병정으로부터 시작된 조롱이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의 조롱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그들은 눈에 가시 갖던 정적이 사라지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알지 못했다. 이 죽음은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스스로 결정하셨고 담대히 걸어가신 길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던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있었으나 시기와 질투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말았다.
이 치욕의 현장을 걸어가며 주님의 신음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행복자이다. 망치소리와 함께 고통 중에 소리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면 그는 성공자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 십자가의 현장은 나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고백인 것이다. 그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이 말씀을 접할 때마다 자주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묵상한다. 그 묵상도 참 귀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오직 죽음을 앞둔 사형수였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서 꽂은 후, 거기에 자신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길은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는 순례자의 삶인 것이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열 두 사도 대부분이 순교하였고, 사도 바울이 걸어갔던 길이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오늘 나의 삶을 점검해본다.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