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 19) "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질문) 주님은 오늘 내가 유다지파처럼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처럼 나의 철병거 사건은 무엇일까?
말씀의 구조속에서 날마다 큐티를 통해 족하도록 은혜를 받고 있는데 그 중에 제일 귀한 은혜중 하나가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고 큐티 내용대로 적용하려 할 때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사람과 환경을 주관하시어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섭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호구지책으로 식당을 했다고 생각해왔는데 큐티를 하면 할 수록 주님의 도우심으로 식당을 하게 되었고 주님은 나의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에서 벗어난 모난 성품들을 이 식당을 통해 연단되길 바라고 계신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교만, 열등감, 오래 참지 못하는 성격, 조급함, 혈기와 분냄 이런 성격들로 인해
나는 지금도 무수히 많이 주님께 죄를 짓고 있다.요즘도 나는 입으로 욕하고 마음으로 수없이 원망하고 저주까지도 하고 있다. 류목자님 표현대로 내적성전이 온전치 못함의 소치이다.내가 주로 욕을 해서 죄를 짓는 대상은 중국인 공급상들과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 진상 손님들이다.주로 중국인들은 한국말을 못한다고 생각하여 화가 났을 때는 그냥 대놓고 한국어로 욕을 하고 한국인 진상 손님들에게는 속으로 욕하는데 문제는 내 얼굴과 행동으로 다 나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님들이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마음이 상하셔서 갑자기 냉기가 돌곤 한다.
왜? 나는 아직도 덤으로 사는 인생 운운하면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식당의 테이블욕심과 음식 적게 시키는 사람들에 대해 무시하고 혈기를 부리는 것일까? 그리고 왜 공급상들을 깔보고 막 대하는 것일까? 이를 큐티하면서 몇 번이고 적용하여 고쳐보려 해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급함, 혈기, 분냄의 밑바닥에는 교만도 있지만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죄의 뿌리는 열등감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참으로 열등감이 많다. 학창시절에는 내가 늦되어 공부를 못했다. 머리도 둔하고 말도 어눌하였고 한 살차이 나는 내 여동생과 늘 비교를 당하며 곰처럼 둔하고 어리숙한 애로 어머니,형들, 누나 친척분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어머니의 공부에 대한 한(恨)으로 어려운 형편에 1:1 가정교사를 두고 초등학교 내내 과외공부를 했는데도 늘 성적은 '미', '양' 투성이였다. 늘 어머니는 공부하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살았고 항상 내 동생과 비교하듯 내 친구들의 성적과 그들의 똑똑한 행동을 나의 그것과 비교하시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말과 행도에 주눅이 들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긴장을 하면 말을 심하게 더듬게 되었다. 당연히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에게 바보 취급당하였고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착하고 성실하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말없는 점잖은 학생으로 고교시절까지 살아왔던 것같다.그래서 나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참으로 부러웠다. 공부 잘하는 것이 당시 내 소원이기도 하였다. 공부를 못한다는 열등감, 말더듬으로 인한 원할하지 못한 대인관계, 그리고 어른들로부터 늘 비교를 당하는 환경에서 살다보니까 나의 열등감은 나를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었고 당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그래서 내 자신을 가혹할 정도로 자학을 많이 했던것 같다.
그것이 대학을 들어가면서 내 삶이 180도 바뀌었는데, 그동안 잠자고 있던 내 자아가 대학생이 되면서 깨어나기 시작하였다.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했던 공부가 고2때부터 탄력을 받아 놀라울 정도로 성적이 오랐으나 고3때 수학을 포기함으로 내가 원하던 과와 학교를 가지 못하였다. 고3 겨울 방학때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이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나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분이 날 정도로 억울해했고 대학생때는
누구보다 공부 잘하고 열심히 노는 학생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치 당시 유행했던 캠퍼스 영화 주인공처럼 그렇게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그런 '나로부터의 혁명'을 실행에 옮겼다. 즉 내속에서 하지말라고 하는 모든 것은 반대로 행동했다. 부끄러워 대중앞에 서지 못하던 나는 일부러 대중앞에 서서 말을 하였고 비록 말을 더듬거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어떤 해냈다는 자신감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천행으로 점수에 맞춰 들어간 전공이 나와 잘맞아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도 했고 또 열심히 놀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의 삶은 중고교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 당시 친구들에게 내가 예전에는 소극적이고 말이 없던 사람이었다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그런 시도 덕분에 전에 없던 자신감과 자존감도 찾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무조건 내 마음 속의 생각과 반대로 하다보니 예의에 벗어나는 것은 물론 무리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 환경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암튼 대학3학년때 본래의 나의 내성적인 성격과 대학시절부터 내 의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적극적인 성격이 절충을 하는 시기를 겪게 되었고 실연(失戀)을 거쳐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대만유학을가지 못한 상실감에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걸렸고 휴학을 한 상태에서 친구의 소개로 이단교회에 나가게 된 거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발령받아 중국공장을 건설 및 영업망 구축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일은 재미있었고 성취감도 많았지만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내 또래의 주재원들에 비해 월급이나 수당 교육지원비, 아파트 임대등 대기업에 비해 나의 대우는 형편이 없었고 회사지원을 받지못해 두 아들을 국제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중국로컬학교를 보내면서 내 열등감
에 불이 붙어 반드시 국제학교 다니는 애들보다 더 영어를 잘하도록 공부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따지고 보면 애들을 그렇게 공부 때문에 두 아들을 잡은것도 바로 이 열등감 때문임을 지금에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형편이 대기업 주재원에 비해 좋지않아 우리집은 한인타운과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 교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이런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어 교회활동이나 목사님이하 제직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유함을 느끼지 못하고 늘 어색해하여 예배만 드리고 그냥 도망치듯 나오거나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중국인 공급상을 무시하고 여러명이 음식을 적게 시키는 한국인들을 홀대하는 죄의 뿌리는 바로 이 열등감 때문이라고 확신한다.자존심 강하고 열등감 덩어리이신 나의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받은 이 열등감은 지금 암처럼 내 심령에 깊숙히 뿌리박혀 주의 길을 막는 주적중 하나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이 열등감을 심어주었고 우리 두 아들도 나처럼 주눅이 들어 머리가 커갈 수록 주일성경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겉돌다 큰 아들은 고3때 친구따라 어릴때부터 다녔던 몸된 교회를 버리고 다른 교회로 갔다. 작은 아이도 중2때부터 친구따라 다른 교회로 옮기고 싶다고 아내에게 여러차례 얘기를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교회가 국제학교 다니는 애들이 많다보니 적응하기가 쉽지않은 눈치이다.
내가 사람들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대하고 손님들을 홀대했던 이유는 그동안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굴욕적으로 당하면서 살아왔던 과거의 열등감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처 때문에 나도 똑같은 방법으로 교만하게 마음대로 판단하여 화를 내며 무시를 한것이라 생각한다. 왕따 당한 사람이 똑같이 다른 다람을 왕따시킨다는 말처럼 과거 상처에 대한 후유증으로 습관적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는것 같다. 내 가 참아왔던 감정의 응어리를 터트리는 순간 가슴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박하사탕같은 짜릿한 희열이 있다. 그맛에 중독이 되어 죄악인줄 알면서 그렇게 내게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틀린것에 대해 속으로 욕하고 마음으로 무시와 홀대를하며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주님은 나와 우리가정에 내적 성전을 한창 건설하고 계시다.
마치 유다 지파가 헤브론을 정복하며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해 가듯이 주님의 번득이는 말씀의 검으로 무지막지하게 50평생 내 심령에 도사리고 있던 죄의 뿌리들을 시원하게 제거하고 계시다. (19절)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쫓아내지 못하였다 하신 것처럼 나도 유다 지파처럼 나의 열등감 골짜기에 숨어있는 철 병거 가진 주민들이 두려워 영원히 뿌리 뽑지 못하고 내버려 두면 (21절) 쫓아내지 못하여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리라 하신것처럼 되지않도록 오늘의 나의 한계를 극복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것 같다.
(적용/결단)
1) 이번 새벽기도회를 통해 아직 극복되지않은 나의 열등감에 대해 회개 기도하겠다.
2) 오늘부터 긴장함으로 오더받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내지 말아야겠다고 의식하고 그래도 내속에서 열불이 나면 바로 맞 대응하지 않고 주님을 2번 불러 본 다음에 천천히 말을 하는 훈련을 반복하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제가 저희 어머니처럼 열등감 덩어리인 것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열등감을 극복하여 주님의 흠없는 산제사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이 만족하실때가지 연단/시험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제가 넘어질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이 열등감의 저주가 저에게서 끊어지게 하여주옵시고 두 아들을 긍휼히 여기사 주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