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예수님
교회력으로 사순절은 이 40일은 이는 부활 주일부터 거슬러 올라 가기 시작하여 주일을 뺀 40일 간의 기간입니다.
특별히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은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이라고 불립니다.
종려주일은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주일 바로 전 주일(主日)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 주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요한복음 21:9)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였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약속을 이해하며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다니에서 보냈습니다.
벧은 집을 의미하고 다니는 슬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감람산, 벧바게, 흰놈의 골짜기, 겟세마넨 동산 등에 계셨고 사자문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며 저주를 하셨으며 화요일에는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마태복음 24#12336;25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감람산 강화를 하셨고 양과 염소,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5#12336;7장은 산에 올라가 산상수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수요일에는 침묵의 수요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9시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위에서는 가상 7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대하여는 나눌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빌라도, 가야바의 법정에서 때로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감동과 감격을 주신 장면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감동을 주는 것과 감격하는 것 보다 더 화내고 속상한 일을 많이 말하고 있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감동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동, 감격을 받으면 싸이몰핀이 나오는데 이는 엔돌핀의 1,000배라고 합니다.
좋은 감동을 받으면 웃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현대인의 특성 중에 분주하고 피곤하며 복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코끝이 잘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엄청난 감동을 주신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으며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 병이 들었을 때 말
씀하시기만 하면 낳게 해주겠다는 말에 이러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정복하라고 하셨으며 성경 전체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모습이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태복음 11:16#12336;17)
우리는 큰 것에 감동을 받는 다기 보다는 작은 것에 감동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를 구하려고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은 사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동생을 구하려다 죽은 사람 등 감동을 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누가복음 19:1#12336;2)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요한복음 4:4#12336;5)
예수님은 여리고와 사마리아로 비난과 비웃음도 상관치 않고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가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 당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비웃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비난과 저주의 길을 가셨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던 베드로에게 고기도 잡게 하시고 조반도 먹게 하셨습니다.
아무런 책망도 없이 떡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래가 아들을 낳겠다고 하자 코웃음을 쳤지만 이삭을 태어나게 하심으로 웃음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기적과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쌍둥이 중 하나가 아파서 죽어갈 때 같은 인큐베이터 안에 넣었더니 다른 쌍둥이 하나가 감싸 않고 살아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장애인 김세진씨와 어머니 양경숙 엄마 이야기도 감동을 주었으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프로에 나왔습니다.
버려진 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의족을 쓰는 아이를 같이 논 아이들이 병신이라고 놀리며 의족을 깨버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온 아이에게 넘어지면 일으키고 넘어지면 또 일으키는 피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혼자 일어서자 가해 아이를 찾아가서 ‘야 나도 너희들이 하는 것을 다 봤어’ 라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만 해줘’ 라고 하면서 빵을 사다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풀 장학금을 받는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어떤 청년이 피자 가게에 알바를 하고 있었습니다.
배달을 갔는데 할머니가 22.000원을 2,200원으로 알고 돈을 주더랍니다.
거의 하루 용돈인데 그 돈만 받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을 갔는데 조반을 차리시며 물고기 잡을 사람이 아니고 양을 칠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평화를 주시는 주님이 감동스럽습니다.
존 호스킨스 대학교에 창립멤버 중 하워드켈리라는 사람은 형편상 공부를 못하였습니다.
어느 때 물을 먹으려고 하여 농장을 가서 물을 달라고 하자 농장 딸은 우유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얼마를 드려야 하냐? 고 묻자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돈을 받으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여 병원에 근무를 하였는데 어느 날 이 사람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치료를 하고 난 후에 그는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이 병원비는 그 때 그 우유 한잔으로 지불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도 감동을 주고 사시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가는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