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그제는 감기 기운도 있고 피곤하기도 하여서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를 쉬기로 작정하고 알람을 6시에 맞추어 놓고 잠을 잤습니다.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5시 10분을 알리고 있었으며 몸 상태도 괜찮은 것 같아서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설교가 막 시작하였습니다.
집이 교회에서 가깝다는 것이 큰 축복이며 가끔씩은 성령께서 이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들을 은혜를 주시려고 나의 연약한 마음과 육체를 깨우쳐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할렐루야!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한복음 20:19)
당신은 평안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유태인의 샬롬은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우리 직원 녀석 중에 나보고 웃으면서 샬럼이라고 놀리면 나는 그것이 샬럼이 아니고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수원시, 경기도, 창화대 등에서 안전과 경제 등을 부르짖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염려와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5천년 역사가운데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때도 없었습니다.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는 서울 3#12336;4개구 정도 되어 국민 소득이 높지만 전체적으로 국민소득 3만 불은 달성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4.19, 광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로 정치적 수준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특히 복음이 흥왕한 나라입니다.
경제적인 부가 평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스스로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평화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낭을 당할 때에 갈릴리의 어부 몇몇 사람 외에는 우호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에 떨고 방문도 열어주는 것도 두려워하는 이들을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제일 무서운 게 사람입니다.
밖에 인기척이 났고 예수님이 나타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을 주겠다.’ 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렇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시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하시면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한지 사흘 만에 홍해를 만날 때는 물을 갈랐고 물이 없을 때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가다가 물이 또 없자 원망과 비판을 하셨습니다,
승승장구 할 때에는 인생에서 겁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구약에서 말한 예수님에 대한 표현이 평강의 왕입니다.
여, 야가 균형을 이루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한 쪽으로 기울면 독재가 되고 결국에는 백성을 괴롭히는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완전한 평화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군사력이 경제력이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고 그 예로 방글라데시는 가장 행복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유태인은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시간을 삼경으로 로마에서는 사경으로 나눕니다.
밤이 맞도록 풍랑과 싸웠고 사경이 되었을 때 유령처럼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귀신이다’ (제 성경에는 ^^) 라고 소리치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말라.’ 라고 하시면서 ‘나야 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이 어려울 때 주무시고 계실까?
어떤 집사님이 힘들고 외로울 때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꿈을 꾸게 되었는데 끝없는 모래밭에 발자국이 처음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고 가끔씩 가다가 한 사람의 발자국이 있더랍니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어려울 때에는 발자국이 하나이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이 ‘내가 너를 업고 있었느니라.’ 라는 음성을 들었답니다.
무서움이 밀려올 때 이것은 부르짖으라는 주님의 신호입니다.
염려와 근심을 이기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움에 빠지게 됨을 경험합니다.
그 때는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사인 당신은 어떻소! 라고 물은 다면 저도 여러분과 똑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말씀만 굳게 믿고 살아간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티테디오스라는 말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송집사님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서 교인들에게 읽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유교사상으로 똘똘 뭉쳐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비록 가족이 불신자들이 많아 기독교식으로 치르지는 못 했지만 찬송과 기도 가운데 평화롭게 돌아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희선 집사님이 투병생활을 하던 중 제가 방문하면 신기하게도 알아보았습니다.
어려운 재산이야기도 저에게 하였지만 저는 영적인 것만을 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교회 짓는데 에 헌금을 하라고 하자 머리를 가로 지었는데 극동방송국에 얼마를 헌금하여서 지금도 잘 사용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일 큰 두려움이 죽임입니다.
천국에 간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들을 볼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을 행해 떠날 때 플렛포홈에서 한 말입니다.
‘저는 어려운 일을 맡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면 저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불안이 밀려올 때는 기도하라는 싸인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의 길로 인도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영광의 자리에 우뚝 서게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