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8일 토요일
여호수아 24:25-33
“언약의 갱신”
여호수아를 마치면서 격랑의 세월을 되짚어 본다.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면서 숨 가쁘게 전개된 첩보전을 시작으로 가나안 정복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초에 등장하는 기생 라합과의 만남은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었다. 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신분이 발각되자 성루에서 장사하던 기생 라합의 집으로 잠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고 라합의 기지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그 이후, 약조한대로 기생 라합의 집에는 붉은 줄이 내걸렸는데 십자가의 그림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마지막 밤에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였다.
드디어 요단강에서 가나안 입성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식이 있었다. 가나안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요단강이 갈라졌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무대는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옮겨졌다.
단순한 이적이 아니었다. 내가 너희들을 분명하게 가나안에 심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셨다.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여호수아 3:10
가나안 입성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막힌 담을 허셨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새로운 살길이이라 했고 휘장은 곧 그의 육체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이 갈라진 것은 새로운 살 길을 여신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여는 서막인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싸워야만 했다. 난공불락 요새라 불리던 여리고 성을 돌고 도는 퍼포먼스를 통해 함성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승리의 함성도 잠시 여리고성에서의 실패를 통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하게 배우게 된다. 그 이후 그들은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결론은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싸우셨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밟고 있는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이것이 그들의 정직한 고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 잔재하고 있는 우상을 버릴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세겜 언약이었다.
성도의 삶 역시 동일한 궤적을 가지고 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가나안 땅에서 크고 작은 전쟁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전면전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남겨진 국지전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여기서 성도가 취해야할 자세가 있다. 승리를 위해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힘과 돈과 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여호수아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지난 500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면서 충성을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맹세를 돌에 새겼다. 세겜 언약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해서 성도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심비에 새기시겠다고 했다. 십자가의 피로 새기신 사랑의 언약이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3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