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0: 11~12)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질문) 우리 가정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주님이 바다 물결을 치시어 나일의 깊은 곳을 마르게하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며 애굽의 규가 없어지게 하신다 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하여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말씀하실까?
지난 2월 4일 주님이 말씀으로 내게 찾아와 우리 가정에 예배가 부활하고 우리들교회 말씀의 구조속으로 불러주신 이후 내 머리속에는 가정중수라는 말이 하루도 떠나지 않고있다. 나와 내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덧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한 이유도 우선은 여기에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두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3절) 잘 돌보아 전쟁의 준마와 같이 믿음의 용사로 키우라고 말씀하신다.
원수, 마귀의 노예가 되어 내가 못이룬 성공과 출세를 두 아들이 이루기를 염원하는 마음에 (2절) 내가 드라빔이 된듯 아이들에게 허탄한 출세를 위한 공부를 강요하였고 점쟁이처럼 아이들에게 미국유학이라는 거짓꿈과 유럽여행이란 헛맹세로 큰 아들은 허영이란 가면을 쓰고 지금 아빠가 했던 방식 그대로 자기 배 채우는 일로 분주하다, 나의 일방적인 '모두 안돼'라는 말에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지금 양같이 유리하며 곤고를 당하고 있다.
부끄러운 구원이 내 인생의 목표였던 나의 야비하고 몰염치한 가치관으로 인해 지금 나의 큰아들 지산이가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 아들을 보니 반평생 내가 돼지처럼 내 배 채우는 일로 욕심부리며 분주해 할 때 얼마나 나로 인해 주님이 가슴이 타고 안타까우셨을까 하고 생각한다. 목사님 저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나온 내용처럼 가인이 여호와를 떠난 후 그의 후손은 자식들에게 집착하게 된다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자식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기가 왕노릇을 하고 자식이 곧 자신이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둥바둥 돈 벌어서 빌딩 짓고 자식 이름 붙여 주는 게 인생의 목적이 됩니다. 자식에게 온갖 투자를 다하는 것입니다."
지난 5년 식당을 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떠났고 오로지 자식들 교육에 All-in하여 내가 못다 이룬 한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내 인생을 자식들에게 모두 걸었다. 내 두 아들이 바로 나이니까. 정말 김양재 목사님이 얘기한 것이 나와 하나도 다름이 없다.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세상을 향해 달려가려는 우리 큰아들을 말씀의 끈으로 다시 붙들고자 이전과는 아주 다르게 신중하게 큰아들에게 다가 가고 있다. 큰아들 지산이는 어렸을 때 아빠의 그 지긋지긋한 고삐에 걸려 숨막혀 죽을것 같은 억압을 당했던터라 이제 아빠라면 그 그림자라도 가까이 하고 싶지않은 상처가 있다. 오직 자기의 필요를 충복시켜 주는 공급자로서의 아빠일때에만 내게 접근해서 필요한 부분을 충족하고 그냥 간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내 아내는 더욱 지산이에게 자신없어 한다. 23년동안 주술처럼 지산이에게 세뇌시켰던 성공, 출세의 환상에서 우리 아들을 깨우는 일은 주님이 강권적으로 내게 찾아와 말씀을 들리게 하신 것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아득함을 느낀다. 내게 찾아오신 성령하나님이 내 아들 지산이게도 찾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해 봤지만, 내게 주시는 말씀은 내가 거한 곳 그 시간에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묵묵히 따라 오시라 말씀하신다.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가운데 한 점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형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죄인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당당히 전하셨던 것처럼, 나도 가정의 중수를 위해서 우리 큰아들을 위해 죄인이 되어 주님 가신길, 바울이 가신 그 길, 우리 목사님이 가신 그 길을 내 주변의 내 지체들이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을 이제 나도 가라 명하신다.
나를 기막힌 구덩에서 건져주신 주님이 우리 큰 아들도 건져주실 것을 말씀하시며 조급해하지 말고 묵묵히 따라 오라 하신다.
(11절) 지금 나와 우리 가정은 주님의 언약의 땅 예루살렘 성전을 가기 위해 고난의 바다를 지나고 있다. 되었다함이 없고 평탄한 길이 아닌 가시밭길일 것이라 생각된다. 고난의 바다를 지나야 내가 반평생 내 뼈가되고 살이 되어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출세, 성공, 돈, 야망, 음란, 거짓같은 안목,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같은 내 모든 죄악들이 나일의 깊은 곳이 마르듯,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고 애굽의 규가 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솔직히 지금 심정은 중간에 이런 과정이 훌쩍 skipping하여 (12절) 결국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하는 happy ending의 드라마가 우리 가정가운데 임하길 바란다. 고생 좀 덜하고 편하고 즐겁게 이 고난의 행군이 마치기를 소원하고 있다.
(1절)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하신것 처럼 십자가 지는 고난의 바다 행군가운데서도 봄비를 갈구하듯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말씀의 구조속에서 날마다 내 죄보기와 회개를 하며 낱낱이 공동체 지체들과 소통하다보면 '구원의 비'를 내려 주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십자가의 길이 고난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구원의비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는한 그리고 함께가는 공동체가 있고 말씀이 있는 한 능히 견디고도 남을 기쁨과 힘을 주실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용/결단)
#65279;#65279;
지산이가 나로 인해 지금 고난의 바다를 홀로 가고있는데 지산이 휴가 기간인 4월 30일까지 지산이를 위한 기도를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하겠다. 더불어 그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미와 근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간동안 오후 4시이후에는 곡물을 끊고 물만 마시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저와 저희 가정을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훈련과장을 통하여 저희의 죄악이 낱낱이 토설되어 그동안 나로 인해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가족들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극복될 수 있도록 아내와 두 아들을 보살펴 주시옵고 제게 주셨던 은총 동일하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없이 어찌 내죄를 볼 수 있으며 음부의 권세를 뚫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저의 큰아들 지산이를 지켜주시옵고 전쟁의 준마되어 복음의 전선에서 싸울 때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탕속에 원수를 짓밟듯 주님이 사랑하는 복음의 전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주님이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옵고 이 고난의 행군을 잘통과 할 수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