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사도행전 2:13)
본문 말씀은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였을 때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여김을 받았지만 아울러 비난도 받았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 중 하나가 하나님을 위하여 조롱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원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큰 강에 다리도 놓고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살기가 어려울정도 견디기 힘들 때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 친구 그를 데리고 철길을 따라서 강을 올라갔습니다.
한 참을 가는데 기차가 왔고 기차가 가까이 오자 개들이 짓어 댔습니다. 멍엉멍...........
그 때 그 친구가 하는 말 ‘친구야! 아무리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이 확실하다면 주변의 조롱에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이 3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바나바와 바울이 1년을 가르쳤고 그리스도인이 선한말로 쓰인 것 같지만 예수쟁이들이라는 조롱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보통의 사람들인 가톨릭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가톨릭의 부패에 저항한 개신교도들을 부를 때 좋은 의미로 사용한 말입니다.
<사도행전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 도다.>(사도행전 26:28)
<베드로전서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고난과 비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존심을 상하게 되면 앙갚음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제 말씀한 것처럼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꿋꿋하게 이겨나가면 하늘나라에서 분명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제너는 천년두를 1789년에 젖소에서 예방 백신인 우두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의사들이 믿지 않았고 그것이 맞는지 실험을 해 보았냐고 비난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생체 실험이 가능하였는데 23명을 하였고 난지 열하루 지난 자신의 아들에게 놨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비난 속에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레그리만 남작은 아르메니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복음을 전하여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당신은 당신이나 자유롭게 살지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감옥 밖에 있다면 어떻게 당신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소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사도행전 28:20)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감옥에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로마시민권을 얻으면 혜택이 많이 주어졌는데 바울도 황제 앞에서 심판을 받겠다. 하여 로마로 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사도행전 28:30#12336;31)
바울이 이년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은 돈 한 푼들이지 않고 로마에 갔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면 관이고 감옥으로 보면 그것은 견입니다.
신적사관으로 보면 감옥일지라도 특별한 축복입니다.
프랑스 귀족이 영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너무 목이 말라서 맥주를 사려고 갔더니 없어서 길가에 있는 농부 집에 들러서 우유를 마셨습니다.
그때 농부가 한 말이 ‘백 년 전에 이곳에서는 웨슬레가 부흥회를 하고 나서부터는 맥주가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제가 웨슬레의 글을 읽고 감동이 되어서 중앙교회에 오기 전 오산에서 14년 동안 설교를 하였지만 오히려 술집이 더 늘어났습니다. ^^^^
우리 교회 굿일 주차장은 원래 헐리우드라는 술집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아침에 교회에 오다보면 엊저녁에 술을 먹었던 것을 확인시켜주기도 하는 곳인데 이제는 장애인을 위한 좋은 장소이며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능력을 믿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웨슬레의 일화 중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말을 타고 가는데 3일 동안 자신에게 비방이나 돌을 던지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에서 내려서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죄를 짓지 않았기에 박해를 받지 않습니까?
그러자 길가에 사람이 벽돌을 들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편해서 자신만을 위하여 살므로 복음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큰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의연하게 대처를 합니다.
조롱 정도는 참고 넘어가는 복음의 사람이 됩시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론으로
<히브리서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성령의 사람과 술 취한 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술 먹은 사람은 술이 자신을 통치하게 되고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낙심하여 고기잡으로 디베랴 호수로 갔습니다.
배 건너편에서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묻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물으면 필레아로 대답을 합니다.
두 번째도 똑같이 묻고 대답을 합니다.
세 번째는 필레아로 묻고 필레아로 대답을 하십니다.
(필레아=주로 친구들 간의 우정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아가페=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무조건적, 보편적 사랑. 초대 교회에서 ‘사랑의 만찬’을 일컫던 용어입니다.)
<요한복음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여기서 남은 성령이라는 의미로 성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에 비교하면 가롯유다는 덜 배반적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비하여 베드로는 계집아이 앞에서 부인하였고 저주하면서 부인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지만 돈을 본인이 가져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성령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꾸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순교는 누구나 할 수는 없지만 성령의 사람이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값싼 복음을 많이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칭송을 받기도 하며 박해와 희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사도행전 3:20)
주민 등록을 하고 많아야 100년 정도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인생을 투자할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건강하다는 말은 어떤 병이 오든지 그 것을 고칠 능력이 있습니다.
그 당시 짧은 시간에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것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브리서 1:5)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시편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버락오바마에게서 볼펜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 것을 기념으로 길이 보전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준 인장이 새겨져 있어서 귀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이 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견딜 수 있습니다.
막장동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끝까지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 9:23)
예수님께 제자들이 병을 고치지 못하자 데리고 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라는 말은 말 좀 잘하라는 말로 언어가 소중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철저하게 언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말이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그대의 언어가 그대의 삶을 결정합니다.
말은 주어가 분명하게 구분하여 듣지 않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먼저 내 귀가 듣고 행하기 때문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알레산더는 왕궁에서 태어나 고귀한 왕으로 살다가 많은 것을 누리다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세상을 정복하였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세상을 정복하여 노예를 삼았고 진정한 자유를 주셨고,
정복의 역사를 만들었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루었습니다.
조롱 받는 길, 험한 길이 실패의 길로 보이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조롱을 받거나 손해를 보지 않는 모습은 아닙니까?
전능하신 주님! 힘들고 어려워도 배반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옵소서!
우리가 거룩한 도전을 받아들이고 거룩한 도전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