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먼저 주라
우리 안에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예수님을 믿는 향기가 물씬 물씬 풍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아 나기를 기도합니다.
회사의 대표나 국회의원, 장관 등은 많은 직위에 오른 사람은 영혼은 똑 같으나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지도력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고 따른 다면 그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6:29)
예수 믿는 사람은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살며 적극적으로 삽니다.
페르시아 왕이 정복지에서 왕을 사로 잡아와서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내 생명을 살려준다면 내 나라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준다면 내 나라의 전부를 주겠습니다.
내 아내를 살려준다면 내 생명을 주겠습니다.‘
아내를 살려준다면 목숨까지도 내 놓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아내 내 아들 때문에 감동을 받고 삽니다.
현대인들은 돈, 자동차, 건물 등 물질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동경 올림픽은 1964년에 열렸습니다.
8년 전부터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인 스타디움을 지으려고 도로를 넓히는데 판자에 뭐가 꿈틀거렸습니다.
적어도 3년 이상이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도마뱀이 못에 찔려서 박혀 있고 주변에서 먹이를 날라주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 놈은 암놈일 겁니다.
수놈은 아마 딴 데로 장가를 갔지 않았나 쉽습니다.
엄마는 아빠하고 다릅니다.
아빠는 그냥 아빠가 되었지만 엄마는 280일을 뱃속에 아이를 넣어 기릅니다.
수많은 잉태의 고통과 시간을 지나서야 아기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모성애가 나왔습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을 통하여서만이 나타납니다.
월맹의 지도자 호찌민은 사회주의자로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매고 다니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선교사가 운영하는 고아원도 폭격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아이가 상처를 입었는데 피를 맞추어본 결과 한 아이가 피가 맞아서 수혈을 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에 피를 공급한 아이가 ‘저는 언제 죽나요?’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죽는 줄로 알고 피를 공급하여주었습니다.
‘왜 너는 그 아이에게 수술을 하도록 하여주었니?’ 하고 묻자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니까요’ 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지만 정말로 몸으로 희생하는 사랑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복음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대속 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무엇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까?
위로는 하나님 사랑하고 옆으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예수님을 다시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은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제사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희생제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양을 드립니다.
사랑은 동사이며 삶이고 명령입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주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건축하려고 모아 놓은 돈을 먼저 다른 개척교회를 짓고 나중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수십 배의 크기로 건축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라기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마태복음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우리들의 신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거룩을 부르짖는 사람,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에 사람들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데 배금주의와 거역하고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땅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시기를 소망하며 예닮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잘 되는 것보다 내가 먼저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나씩 실천하여 변화를 일으키시는 여러분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선교사로서 희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선교를 하였던 그 곳에 가서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프리카가 슈바이처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그 분이 한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슈바이처가 모금을 하러 독일에 갔을 때 3등석에서 제일 나중에 내렸습니다.
1등석에서 화려하게 나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슈바이처가 한 말 중 모금하러 온 사람이 1등석을 타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가 골프를 굳이 안친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되도록 목회를 하기 때문에 안칠려고 한다면 됩니다.
어떤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양보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양보하고 조금 손해를 보는 것이 복음적인 삶입니다.
예배당 내에서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욕심을 떨쳐내 버리고 복음으로 우리가 베풀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까닭에 이 세상이 변화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