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4일 화요일
여호수아 22:21-34
“소통”
7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군인이 되었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더 따끈따끈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내내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친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안식이 찾아왔다. 전쟁이 마무리 되면서 그동안 늘 선봉에서 애써왔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와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자신들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각 지파에서 각출한 수많은 전리품을 나누며 사랑과 우정을 되새겼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잠시 그들이 요단 서편 강가에 또 다른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단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무기를 다시 손에 들었다. 곧 저들과의 전쟁을 치를 기세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신앙은 그들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였다.
다른 제단을 쌓는 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변질이었다. 일찍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신명기 12:13-14
그러나 그들은 분노에 앞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우선 일의 전후를 살피는 것을 우선했다. 잠시 무기를 내려놓고, 특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엘르아셀의 아들 비느하스와 열지파에서 뽑은 천부장을 대표로 진상조사단을 꾸린 것이다.
오늘 갈등의 원인이 제단에 있었다. 헤어짐과 동시에 찾아온 갈등의 원인이 소통의 부재였다. 그들이 7년 전쟁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과 평안 속에서 등장한 갈등을 그들은 대화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붙잡았다.
그들의 대표자로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삼은 것이 눈에 띈다. 굳이 엘라아살의 아들이라는 거듭된 표현은 정통성에 대한 뒷받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엘르아셀은 아론의 셋째 아들이었다. 광야에서 잘못된 불을 드려서 죽은 그의 형들 나답과 아비후를 대신해서 세워진 제사장이었다. 하물며 잘못된 불로 인해서 죽음을 면치 못했다면 다른 제단을 쌓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치명적인 죄였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서 오해가 이해가 되었고, 다시 한 번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며 돌아오게 된다. 매스컴과 교통의 발달로 세상이 좁아졌다고 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지만 소통이 부재를 하소연하는 또 다른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역시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자기만이 옳다는 주장의 끝은 분열이라는 막장으로 가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처럼 소통의 부재 시대에 경청이 그 해답이 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듣는 귀는 둘을, 말하는 입는 하나를 주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