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축복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베드로전서 2:19)
이 말을 현대인 성경으로 번역하면 쉽게 더 쉽게 이해가 갑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베드로전서 2:19)
어느 집에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하인에게 주인이 ‘너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찌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주인님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냥꾼이 두 마리를 쫓고 있는데 죽은 것을 쫓아갑니까?
아니면 화살에 맞고 절룩거리는 짐승을 쫓아갑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영혼이 죽어서 사는 것보다는 상처를 당하고서도 쫓아가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마귀는 영혼이 죽은 사람을 쫓아서 괴롭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마귀의 것이라면 당신은 살아서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거나 바르게 살려고 하면 갈등하게 마련입니다.
적당하게 타협을 하고 살면 그 사람은 편안하겠지만 복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다니엘, 요셉, 예수님처럼 환난을 당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라 살면 고난과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태양과 비를 내리십니다.
이것은 일반 은혜이지만 특별하게 구원을 받거나 성령의 체함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촛불은 밖이 컴컴할 때만이 필요합니다.
썩어가는 세상에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일 있을 때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성경에서 두려워 말라가 365개 나오는데 그 말은 365일 말씀을 묵상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겨 논 싸움을 우리가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법을 만들고 집행을 하였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없이 하려고 붙잡아갔습니다.
그러자 가말리엘이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을 박해하지 말자고 하여 매로 때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놓아 줍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값싼 복음만을 주로 많이 듣습니다.
축복을 이야기 하고 건강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지만 십자가의 진리를 말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요즈음 훼방을 받고 박해를 받지만 나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민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리라 믿습니다.
‘예 닮 삶 13차는 치유를 제목으로 할 예정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과 회복을 가르쳤습니다.
통합의학을 하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시대부터 600년간 교회에서 치료를 담당하였습니다.
이 때 한 젊은 신부에게서 신유의 은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시기하여 병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님 안에 치유하심이 분명히 있습니다.
알은 21일이 지나고 깨어나아야 생명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일을 깨고 나올 때를 줄탁 [#21840;啄] 이라고 합니다.
42도에서 20일이 지나서 3주일째 되는 날 어미 닭은 알을 깨려고 나오는 닭의 소리를 듣고 부리로 밖에서 깨줍니다.
깨어 나오지 않는 알은 죽은 알입니다.
깨어 나오는 고통이 없다면 병아리가 되는 영광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N0 cross No crown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수가성의 여인을 만나러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사도행전 20:9)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사도행전 20:12)
청년을 다른 표현으로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서 1:29)
은혜도 주셔서 믿게 하였지만 고난도 받을 것도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진시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고난을 받게 됩니다.
어떤 선교사가 꿈을 꾸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금 십자가, 은 십자가, 나무로 만든 넓은 십자가를 주어서 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넓은 수렁을 건너는데 나무로 만든 넓은 십자가로 다리를 놓은 사람이 통과를 하더랍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참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요셉, 다니엘, 야곱처럼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지 않는 요셉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요셉은 어머니가 베냐민을 놓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슬픔의 아들인 베노미를 기쁨의 아들인 베냐민으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되고 꿈을 꾸어서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견디어 냈습니다.
아버지가 양을 잘 치는지 보고 오라고 하자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옷을 벗기고 염소를 잡아서 피를 그 옷에 발라서 짐승에게 몰려서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염소를 잡아 형을 속이고 또 그 아들들은 염소를 잡아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창세기 39:4)
요셉은 열심히 공부를 하여서 가정 총무를 시켰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에는 나오지 않죠 ^^^^^)
<베드로전서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히브리서 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베드로전서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고난은 잠깐이지만 영광은 무한합니다.
복음의 야성을 깨우는 고난도 감수하는 성도들이 다 됩시다.
<디모데후서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베드로전서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고난을 받는 것도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성경속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주저하고 싶을 때 그 때를 참고 견디면 영광스러운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